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 달 만의 공개 활동으로 농업 현장을 시찰했다.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결렬 이후 첫 공개 행보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현장 시찰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협상에 연연하지 않고 자력갱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810군부대 산하 1116호 농장을 현지 지도했다고 9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활동이 보도된 것은 지난달 10일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 참관 이후 처음이다. 관영 매체가 통상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 다음 날 보도해온 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농장을 시찰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지 사흘 만이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불리한 기상 조건에서도 많은 소출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품종들을 연구하는 시험농장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2015년부터 매년 이 농장을 찾고 있다.
이곳에서 김 위원장은 “앞으로도 세계적 수준의 우량 품종을 더 많이 육종 개발함으로써 인민들의 식량 문제, 먹는 문제를 푸는 데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농장 곳곳을 둘러보면서 ‘불리한 환경과 병해충에 잘 견디는 농작물 육종’ ‘새 품종 보급 개선’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영농방법 연구’ 등을 당부했다. 올해 잦은 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로 식량난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직접 민생 챙기기에 나선 모습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 결렬 후 미국에 대한 메시지는 충분히 보낸 상황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은 미국을 더 자극하기보다 민생을 챙기는 데 집중하는 전략적인 행보를 취한 것”이라며 “실무협상을 앞두고는 김 위원장이 잠행했지만 이제는 일단락됐으니 내부결속 강화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불씨를 살리기 위해 관련 상황을 공유하고 양국 간 공조를 재확인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만나 스톡홀름 실무협상 등 북한 관련 동향 및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본부장은 비건 대표와 협의를 마친 뒤 취재진에게 “어떻게 하면 지금부터 대화의 모멘텀을 계속 살려나가느냐에 대해 주로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이번 방미 때 한·미·일, 한·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도 가졌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8일(현지시간) 북한의 지난 2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와 관련한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회의 직후 유럽 지역 6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폴란드 에스토니아) 유엔대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측은 이 규탄 성명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향후 북한과의 협상 재개에 부담이 될 수 있어 빠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외교부는 유럽 6개국의 규탄 성명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