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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의구] 홍콩 ‘자유의 여인상’



홍콩 주룽(九龍)반도와 신제(新界)지구 경계에는 시쯔(獅子)산이 있다. 사자 머리를 닮은 모양이라 이름 붙여진 바위산으로 홍콩의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다. 해발 495m 정상에 오르면 홍콩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시쯔산은 수년 동안 홍콩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돼 왔다. 마오쩌둥 집권 시절 사회주의를 피해 내려온 중국인들이 정착했던 주룽반도가 목전이기 때문이다.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80일가량 계속됐던 2014년 우산혁명 당시 시위대들은 이 바위산 절벽에 대형 노랑 깃발을 게양했다. 송환법 문제로 촉발된 새로운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9월 중추절 때는 수백명이 이 산에 올라 인간띠를 형성하고 랜턴과 레이저포인터를 비추는 야간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3일 새벽 시쯔산에 ‘자유의 여인상(Lady Liberty Statue)’이 등장했다. 16명의 팀이 4m 높이에 100㎏에 달하는 석상을 나눠 짊어지고 가파른 산길을 걸어올라 설치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여인상은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뉴욕 ‘자유의 여신상’의 미끈한 외모와 완연히 다르다. 홍콩 시위대의 상징인 방독면과 고글을 착용하고 오른손엔 우산을, 왼손엔 ‘광복 홍콩, 시대 혁명’이란 구호가 적힌 검은 깃발을 들고 있다. 경찰이 쏜 시위진압무기에 한쪽 시력을 잃은 여성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자유의 여인상 제작자로 알려진 알렉스(32)는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광장에 세워졌던 ‘민주 여신상’에 영감을 받았다고 외신에 밝혔다. 양손에 횃불을 받쳐든 민주 여신상은 최근 홍콩의 대규모 집회에 종종 등장했다. 홍콩시민들은 여신상 모형에 수갑을 채우거나 붉은 물감을 흘려 시위 탄압을 묘사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홍콩 시위를 상징하는 별도의 작품을 제작할 필요성이 제기되자 시민 공모를 거쳐 디자인을 확정했다. 제작비용은 인터넷 모금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제작진은 시쯔산이 자유의 여인상의 최종 안착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의 민주 여신상처럼 여인상의 운명은 중국 당국의 처분에 맡겨져 있다. 홍콩 시위가 평화롭게 마무리될지 여부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시민들은 송환법이 철회됐지만 우산혁명의 구호였던 직선제를 비롯한 민주화 요구를 확대하며 130일 가까이 집회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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