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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배병우] 누가 트럼프의 미국을 믿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분별한 ‘시리아 철군’의 후유증이 초강력 허리케인급이다. 미국이 70여년간 구축한 중동에서의 지배적 지위가 단 며칠 사이에 봄눈 녹듯 사라졌다.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난데없는 결정에 쿠르드족은 터키의 화력 앞에 도살장의 양 신세가 됐다. 대학살 위험에 처한 그들은 그동안 미국과 함께 맞서왔던 러시아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구조신호를 보냈다. 미군이 허겁지겁 떠나면서 생긴 군사력 공백은 러시아와 시리아의 것이 됐다. 이 지역 미국의 최대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러시아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약 20년에 걸친 중동전쟁에 신물이 나 있는 건 사실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중동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처럼 중대하고 전략적인 결정을 아무런 준비나 대책 없이 내린 데 대해 미국 전체가 경악하고 있다. 미 주요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시리아에 주둔한 1000명의 미군을 철수할 경우 이 지역에 초래될 심각한 권력 공백을 경고한 각종 보고를 무시했다. 미군 철수는 지난 6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통화 중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에르도안은 이날 전화에서 쿠르드 지역인 시리아 북부에서의 군사작전을 통보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동의했다. 그는 참모들과 협의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외교정책의 민낯이 햇빛 아래 드러났다. 그것은 트럼프 개인의 육감에 의존한, 무(無)계획·즉흥 외교다.

트럼프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대는 경제 제재에 대한 회의론도 커졌다. 트럼프는 군사력 등 경성권력 대신 경제 제재의 효과를 강조해 왔다. 트럼프는 뒤늦게 쿠르드족 공격을 막기 위해 터키에 대한 경제 제재안을 발표했지만, 에르도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 군사력의 후퇴나 세력 균형의 변화는 어쩌면 지엽적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1만1000명의 희생을 무릅쓰고 IS 격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쿠르드족에 대한 배신이다. 미국에 대한 불신은 중동에, 군사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2주에 걸쳐 시리아 철군 결정을 다뤘다. 최신호는 ‘트럼프 대통령의 쿠르드족에 대한 배신은 미국의 신뢰를 박살 냈다. 누가 트럼프의 미국을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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