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갈등 이후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가 담긴 친서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전달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4일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고, 양국 총리는 현 갈등 상황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다만 관심이 집중됐던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구체적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총리와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21분간 회담했다. 한국 총리실은 “중요한 이웃국가로서 한·일 관계의 어려운 상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데 양국 총리가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관계 경색 국면을 조속히 타개하기 위해 외교 당국 간 대화를 포함한 다양한 소통과 교류를 촉진시켜 나가자고 아베 총리에게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 당국 간 의사소통을 계속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 총리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양국이 지혜를 모아 난관을 극복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화답했다. 이 총리가 전달한 문 대통령의 친서에는 한·일 양국이 가까운 이웃으로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해야 할 중요한 파트너임을 강조하고, 양국 간 현안이 조기에 해결될 수 있도록 서로 관심을 갖고 노력해 나가자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한·일 정상회담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이 총리는 귀국길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정상회담은) 단지 거론됐다고만 말씀드릴 수 있다”면서도 “얼음장 밑에서도 강물은 흐른다”고 가능성은 열어뒀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총리가 ‘양국 관계가 개선돼 두 정상이 만나게 되면 좋지 않겠느냐’는 본인 희망을 아베 총리에게 말한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다음 달 태국에서 열리는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나 칠레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 총리는 회담에서 핵심 현안인 징용 배상 문제가 거론되지는 않았다면서도 “(갈등 해소를 위한) 몇 가지 방안이 오갔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실무선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고 있으며 당국 간에 여러 형태를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어떤 (특정한) 것이 있는 건 아니고 모색하는 단계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8월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양국 관계가 이번 회담으로 긍정적인 의미의 분기점을 맞았다고 평가했다. 이 총리는 “이제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진 외교 당국 간 비공개 대화가 이제 공식화됐다고 받아들인다”며 “이제부터는 속도를 좀 더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도쿄=손재호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