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혜련 (1) 머리통만 보고 기뻐 “고추 달아라! 떡도 맞추고!”

개그우먼 조혜련씨가 두 손을 모으고 환하게 웃고 있다. 조이컬쳐스 제공


나는 1970년 5월 29일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장손이었던 우리 집은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다. 첫째를 딸로 낳았을 때 친할머니는 “그래 첫째 딸은 재산이라 카더라”면서 마음의 위로로 삼으셨다.

또 둘째 셋째를 딸로, 넷째도 딸을 낳자 엄마의 실망은 물론이고 할머니의 역정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나면 할머니는 문을 빼꼼히 열고 “아들이가? 딸이가?”라며 성별 확인을 하시고는 딸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와서 밭매라!”셨다. 일거리를 준비해 아들을 낳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하신 것이다.

다섯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엄마는 그동안 한 번도 꾸지 못한 태몽을 꿨다. 꿈속에 커다란 호랑이가 먼 곳에서부터 돌진해 엄마 뱃속으로 훅하고 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용맹스러운 호랑이가 꿈속에 나타났으니 누가 아들이라고 믿지 않겠는가.

엄마는 확률적으로도 다섯 번째 정도 되면 ‘이제 아들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산부인과를 방문해 성별 확인도 하지 않았다. 매일 다르게 불러오는 배를 어루만지며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주입했다.

“니는 아들이다. 아들이어야 한데이. 나를 살려낼 아들이다.”

드디어 열 달이 되어 산통은 시작됐다. 아이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통이 빠져나오자 모두 탄성을 질렀다.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아이의 머리통이 장군감처럼 큼지막하고 튼실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다 빼내기도 전에 할머니랑 아버지는 머리통만 보고 기뻐서 조씨 집안에 아들이 태어났다며 환호를 질렀다.

“고추 달아라! 떡도 맞추고! 하하하.”

짚으로 엮어 미리 준비해 둔 고추를 꿰어 처마 밑에 매어 달고 잔치를 하기 위해 방앗간에 전화를 걸어 떡을 맞추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아이의 몸이 엄마 뱃속에서 다 빠져나오며 해산의 고통이 끝나갈 무렵 아이를 받는 걸 도와주던 아주머니가 “뭐꼬! 이를 우짜면 좋노!”라며 작은 탄식을 뱉어냈다. 이유는 달려있어야 할 고추가 어디에 끼었는지 본인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 달 동안 아들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온 엄마는 고추가 달려 있지 않다는 말에 울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내뱉었다. “이를 우짤끼고. 배신자 가스나!” 내가 태어나자마자 엄마한테 들은 말은 배신자였다. 내가 뭘 배신했단 말인가. 그냥 나는 태어났을 뿐이고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말이다.

그날 밤 엄마는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던 나를 거꾸로 엎어놓은 채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꼴도 보기 싫은 가스나! 그냥 확 죽어버리라.’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태어난 지 몇 시간도 안 된, 목도 못 가누는 아이를 엎어놓는다는 것은 죽으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한참 뒤에 엄마가 이불을 들쳐보니 땀을 잔뜩 흘리면서 아주 잘 자고 있더란다. 질긴 목숨이었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도 딸을 낳은 엄마는 여덟 번째 만에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

약력=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석·박사, 평택대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신학박사 과정, 1992년 KBS 개그맨 공채 10기 데뷔 후 연기자 가수 강연자 어학강사 방송인으로 활동, 일본어 중국어 관련 다수의 어학교재와 ‘열렬하다 내 인생’ ‘조혜련의 미래일기’ 등 저서 발간, 2017년에는 ‘성경낭독이 있는 찬송’ 앨범 1, 2집 발표.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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