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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美 압박·외교적 부담에 지소미아 연기로 급선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2일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는 일본 나고야로 떠나기 위해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나와 차량에 탑승해 있다. 강 장관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회담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종료 시한(23일 0시)을 불과 6시간 앞둔 22일 오후 6시에 극적으로 조건부 유예됐다. 한·일 지소미아를 유지하라는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과 지소미아 종료 후 안게 될 엄청난 외교적 부담 때문에 정부가 종료 강행에서 유예로 급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를 향한 미국의 압박 강도가 예상보다 거셌고, 지소미아 종료로 한·미 동맹 관계가 훼손될 경우 다양한 분야에서 불이익이 우려되자 정부가 끝내 조건부 연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달 들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 미국 외교·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한국을 찾아와 지소미아 유지를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철회되지 않는 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한·일 사이에 적극 중재에 나서면서 방향을 돌렸다.

현재 진행 중인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 측에 대폭적인 분담금 증액을 요구한 것도 지소미아 유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소미아 종료로 한·미 간 신뢰가 크게 손상되면 미국 측이 한국을 더욱 수세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올해 분담금의 5배에 달하는 47억 달러(5조4850억원) 정도까지 분담금을 올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소미아가 끝내 파기돼 한·미 동맹 관계가 약화된다면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상황을 한국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코리아 패싱’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지소미아 유예 결정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또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지소미아 파기로 한국에 대해 감정이 상한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자동차 232조)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최고 2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었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미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 직접 나서 굉장히 강력하게 한국을 압박했고, 한·미 관계에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자 정부에서도 지소미아 종료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일 간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 등에 대해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니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양국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한·미 간 신뢰관계에 타격이 올 것을 정부가 고민해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연기 결정을 내린 것 같다”며 “한·일 간 협상에서도 한국의 입지를 넓힐 수 있는 잘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가 유예 결정을 내린 것은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한 보낼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보내 한국을 설득하는 등 전력투구한 것이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진행될 한·일 간 실무회담과 함께 중국에서 다음 달 말 열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만나 징용 배상 문제 해법 등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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