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면서 재계도 한숨 돌린 분위기다. 악화된 한·일 관계가 더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은 일단 면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이 지난 7월부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해 수출을 규제한 문제는 여전히 진전이 없는 상태여서 향후 양국 정부가 풀어가야 할 과제로 남았다.
재계 관계자는 24일 “양국 갈등 해결 조짐이 보이는 긍정적 시그널로 해석된다”며 “재계는 이걸로 한시름 놨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소미아를 계기로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이 좀 더 나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다”며 “물론 여전히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강화하거나 확대할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은 있지만 문제가 한번에 해결되기는 어렵고 향후 지소미아 협상 과정에서 하나씩 넘어야 할 산”이라고 말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도 “극단적인 상황은 면했다”며 “지금 분위기를 잘 이어간다면 결국 일본이 3개 품목에 대한 규제도 풀으리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일본이 향후 어떤 조치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마냥 긍정적 시그널로 보기엔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가 유지된다고 해서 당장 타격을 입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규제 품목에 해당하는 소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쓰고 있다.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 관련 기업들은 최근 국산 소재를 쓰거나 다른 국가로 소재 수급을 다변화해 왔다.
기업들은 소재·부품 수급 문제보다 일본의 수출 규제라는 변수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수출, 투자 등 사업 전반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일 무역 갈등이 연내에 해소되지 않고 장기화함에 따른 불확실성이 내년도 사업 계획 등을 짤 때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일 무역 갈등이 심화할수록 일본에 비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더 클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 제외에 따른 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의 전기전자산업의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GDP 손실은 최고 6.26%까지 증가할 것”이라며 “반면 일본의 GDP 손실은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경엽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국가 차원의 외교적 노력은 물론 민간 외교력까지 총동원해 한·일 무역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