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부드럽고 나약?… ‘온유’는 강한 자의 성품

한기채 중앙성결교회 목사가 지난 1월 19일 교회 봉사위원회 교우들과 은평천사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앙성결교회 제공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온유’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성품일 수 있습니다. 온유는 유순함 온화함 부드러움 등을 뜻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성품으론 자기를 보호하기 어렵고,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지도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온유는 마냥 부드럽기만 한 나약함이나 무능이 가져온 비굴한 상태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강한 자의 성품이자 ‘통제된 강력한 힘’입니다.

올바른 목적 향해 힘을 통제하는 능력

힘이 아무리 강해도 통제되지 않으면 그저 파괴하는 힘, 즉 폭력이 됩니다. 바람 파도 핵에너지 등이 통제되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지만 잘 통제되면 생활에 꼭 필요한 에너지가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처럼 온유는 일정한 방향, 바른 목적으로 힘을 통제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위대한 일을 이루기 위해선 타고난 힘과 재능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가진 능력을 어떻게 잘 통제해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걸 마음을 지키고 다스리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모세는 본래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의 강함이 통제되지 못하자 충동적으로 애굽인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이후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 나이 들고 힘이 없어진 그때 하나님은 비로소 출애굽 사명을 맡겼습니다. 오랜 광야 생활과 하나님의 연단으로 자신의 강한 성격을 통제할 수 있게 된 모세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

온유를 방해하는 걸림돌

필립 케네슨은 자신의 책 ‘열매 맺다’에서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짙은 오늘날에 온유의 가치는 크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온유한 삶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자신을 선전하라고 분위기를 조장하는 문화, 공격성, 힘 있는 자리를 열망하는 문화를 지적합니다.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문화는 다른 이를 존중하기보다 과도하게 시기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또한 현대인의 공격성은 학교폭력, 인터넷 악성 댓글, 성·언어폭력, 가짜뉴스 등 사회 전반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힘을 갖는 자리를 추구하는 문화는 무한경쟁을 부추겨 타인을 그저 쓰러뜨려야 할 경쟁 상대로만 바라보게 합니다. 현대인이 소위 ‘싸움닭’이 된 이유입니다. 이런 문화가 지배하는 한 서로에게 온유의 성품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케네슨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 온유한 성품을 기를 방법으로 ‘기도’를 추천합니다.

기도, 온유한 성품을 기르는 방법

욕망을 부채질하는 세속적 문화에서 성공보다 더 소중한 삶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모습도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란 하나님께 문제와 소원을 아뢰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그분의 뜻을 알아가는 방법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며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될 때, 경쟁과 성공만 생각지 않고 타인을 향해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우리는 사랑 평화 섬김 나눔 돌봄 같은 고귀한 가치에 목적을 두고 온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최후 심판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온유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성품

구약에서 온유의 대표적 인물은 이삭입니다. 이삭은 자신이 거하던 땅에 흉년이 들자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통치하는 그랄로 이주합니다.(창 26) 이삭은 거기서 농사를 지어 그해 100배의 결실을 얻습니다. 이삭의 큰 성공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은 아브라함 시대에 판 모든 우물을 메우고 이삭을 쫓아냅니다.

이후에도 이삭이 이주한 곳마다 찾아와 그가 판 우물을 계속 빼앗습니다. 족장이었던 이삭은 이들의 무례함에 얼마든지 무력으로 대항할 수 있었지만 온유하게 대처합니다. 매번 힘겹게 판 우물을 이들에게 양보했습니다. 이런 이삭의 온유함과 하나님의 축복은 결국 블레셋 왕 아비멜렉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 26:28~29)

온유한 삶이 늘 손해 보고 뒤처지며 패배하는 건 아닙니다. 온유한 자는 정복과 다툼을 피하지만, 하나님이 평화적으로 더 크고 좋은 것을 선물합니다. 이삭은 사람을 얻고 땅을 기업으로 받았을 뿐 아니라 그 땅에 뿌리를 깊이 내려 지경을 더욱 넓혔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다툼으로 무엇인가를 얻게 되면 다시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온유함으로 승리해 얻은 것은 평안한 마음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우리에게 더 경쟁적으로 살아가라고 몰아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기독교인은 온유한 성품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이는 폭력과 과도한 경쟁으로 얼룩진 이 시대를 치유하고 이끌 수 있는 힘입니다.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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