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29일] 유대인의 왕 예수



찬송 : ‘주 예수 넓은 사랑’ 497장(통 27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9장 17~22절


말씀 : ‘예수님이 누구냐’는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보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도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른바 ‘교회 내 불신자’입니다. 반면 교회 밖에 있다 해도 이 질문에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잠재적 신자’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냐를 깨닫는 여부는 그 사람의 미래뿐 아니라 영원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질문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며, 그 대답에 따라 인생이 결정됩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대답과 행동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간 몇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사람은 십자가상의 강도입니다. 십자가 좌·우편에 못 박힌 ‘다른 두 사람’은 흉악한 강도질로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죄로 정죄 받아 죽음과 지옥 문턱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가까이에서 반전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 중의 한 강도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예수 이름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받기에 늦을 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이든지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강도와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대제사장과 서기관 등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고소한 이들입니다. 그들은 제사를 주관하고 말씀을 연구하여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갈급하지 않은 종교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당시에도 멀리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를 찾기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연구하여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준 서기관들은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지식만 전해주었을 뿐 구세주를 만나러 동방박사들과 동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과 원수 되는 방향의 일만 하고 말았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사람이 또 한 명 있습니다. 빌라도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여러 번 만나고 심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때 남과는 다른 인격, 영적 권세를 느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책임을 회피한 재판 끝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판결 후 그가 했던 일은 그 십자가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을 써서 붙인 일이었습니다.

빌라도의 모습 속에 그의 영적인 갈등이 숨어 있습니다. 의로운 이를 죽음에 넘겨준 자책감도 엿보입니다. 아마도 그는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유대인의 왕’에서 머물고 말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에 대해 분명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거의 그리스도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종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만 그리스도인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고백하여 진짜 그리스도인, 천국 백성의 삶을 사는 가정이 됩시다.

기도 : 주님,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한 고백 위에 내 신앙이 세워지게 하소서. 남들처럼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 속에 남다르게 믿는 믿음을 주소서. 우리 가정이 이런 신앙으로 하나 되어 주님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성준 목사(인천 수정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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