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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비핵화, 새로운 시작의 전제



2020년 새해에도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복잡하다. 지난 2년간 희망 속에 추진된 ‘한반도 비핵화’ 여정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현격한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결렬됐고, 장기 공전에 빠지면서 거의 체념 상태다. 북한은 비핵화 첫 단계 조치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내세워 미국에 제재 해제나 완화를 요구하지만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비핵화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비핵화 방식에 대한 논의 진전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 것도 사실이다. 정상 간 톱다운 방식의 협상에 기대를 걸었던 한국 정부는 곤혹스럽다.

북한은 미국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길’을 갈 것임을 천명하면서 트럼프 정부를 압박해 왔다. 그러나 누누이 강조했던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은 결국 배달되지 않았다. 미국과의 실질적인 강경 대치가 가져올 파장과 비공식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중국의 입장, 다음 수순을 고려한 김정은 위원장의 전술적 선택이다. 대신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안전 보장을 위한 공세적 조치’와 자력갱생에 기반한 ‘정면돌파’를 강조하고 나섰다.

결국 2년여에 걸친 북핵 협상에서 비핵화 논의는 실종됐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미국에 전달하면서 시작된 북·미 핵 협상과 남북 간 적극적 소통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추진 구상도 좌초 위기다. 북·미 협상이 순탄치 않자 한국 정부의 역할도 축소됐고, 북한은 한국 정부의 선의를 무시한 채 더 이상 북·미 사이의 중재자 역할에 미련을 가지지 말라며 연일 입에 답지 못할 막말을 퍼붓고 있다. 미국에는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북한은 변한 게 없으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벼랑 끝 전술’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다.

지금은 지난 2년간 진행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왜 답보 상태에 빠졌는지를 냉정하게 반추해야 할 시점이다. 물론 지난 2년간 한반도 정세가 안정적으로 관리됐다는 점은 분명 평가할 만하지만, 그동안 북한이 보인 행태와 그 이면을 보면 적어도 남북 교류 강화를 통한 난국 돌파를 강조할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우선, 남북 대화나 북·미 협상의 모든 출발점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동의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 6·30 판문점 정상회동, 9·19 평양선언을 관통하는 모든 전제는 비핵화다. 비핵화가 실종된 교류 강화 추진은 본질 회피다. 셈법은 미국뿐 아니라 북한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은 지난 2년간 자신들의 최후 억지력인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마치 비핵화를 추진할 것처럼 행동했지만 협상 중에도 핵물질 생산을 계속하면서 미사일 능력 향상 노력을 계속했다. 비핵화 의지는 고사하고 북핵 고도화에 철저히 이용당했으며, 한국은 ‘핵보유국 북한’의 위협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도 자명한 사실이다.

셋째, 이 과정에서 북한은 북·중·러 구도 재건에 성공해 대미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대미·대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결속력이 느슨해진 한·미·일 구도에서 일방적인 선의만 발출하는 대북 교류 확대는 또 다른 불협화음을 야기할 수 있다. 미국에 우리 입장을 강조하고 협조를 구하려면 한·미 공조는 강화되는 게 옳다. 기존의 한·미·일 공조를 통한 대북 억지력도 당연히 유지돼야 한다.

한반도 평화 유지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전제가 사라져서는 안 되며, ‘적극 방어력’ 이상의 전투역량 확보가 우리 안보의 생명줄임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서해 5도 등 충돌 가능성이 큰 최전방 지역의 안보와 평화를 위해 해군력은 물론 막강 전투력을 갖춘 정예 해병대 특수부대가 육성·포진돼야 한다. 비핵화 원칙과 군사 억지력이 담보되지 않는 평화는 위험한 평화이기 때문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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