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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방역만으로도 허덕이는 지구촌… 바이러스, 외교까지 집어삼켰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위부터)은 모두 자국 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것이 급선무여서 기존 외교 현안 해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한반도 안팎의 외교적 움직임도 완전히 얼어붙었다. 거의 완전한 ‘올스톱’ 상황이다.

정부는 올들어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기다리지 않고 남북관계에서부터 물꼬를 튼다는 구상을 세웠으나 코로나19 탓에 첫발조차 내딛지 못했다. 남북은 물론 한·미, 한·중, 한·일 간에도 굵직한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각국이 코로나19 방역 등 국내 현안에 집중하느라 진전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별관광 제안에 여전히 뚜렷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이 거부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국경을 전면 봉쇄하고 있어 개별관광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리 정부와 미국이 제안한 코로나19 방역 협력에도 북한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남북, 북·미 관계가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가 한때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하다.

북·미 관계 역시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교착 국면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으로 보낸 친서에서 코로나19 방역에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인 정황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답신 격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도 방역 지원을 받아들이겠다는 언급은 없었다. 도리어 북한은 3월 30일 외무성 대미협상국장 명의 담화에서 “(북·미) 대화 의욕을 더 확신성 있게 접었다”며 미국이 태도를 바꿔야 대화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3일 “국제기구 여러 곳이 이미 북한에 코로나19 관련 물품을 전달하기로 한 상황”이라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북 제재 등 난국에 대한) 정면 돌파를 선언한 북한이 코로나19를 이유로 남한과 협력에 나설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미 간 현안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코로나19의 여파를 맞았다. 양국 간 입장차가 극단적으로 컸던 데다 코로나19 탓에 소통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결국 지난 1일 한·미동맹 67년 역사상 처음으로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 사태가 현실화되고 말았다.

다행히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전화상으로 한·미 간 코로나19 방역 협력을 논의한 이후 방위비를 둘러싼 양국 간 이견이 좁혀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협상단은 잠정안을 마련해 각 정상에게 보고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 내 확진자가 폭증하는 등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감염병 대처에 비해 시급성이 떨어지는 한·미 방위비 이슈에 얼마나 집중력을 보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중 관계는 정부 차원에서 마스크 등 방역 물품을 주고받으며 표면적으로는 다소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중국 지방정부가 한국발 여행객을 격리 조치한 것을 두고 한·중 관계의 한계를 노출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정부는 중국 눈치를 보는 저자세 외교를 한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코로나19가 조기에 종식되지 않으면 한·중 최대 현안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수출 규제 문제로 치고받았던 한·일 관계는 코로나19 때문에 더욱 얼어붙었다. 문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언급하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예고 없이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제한하고 이에 우리 정부도 맞대응하면서 다시 갈등이 증폭됐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둘러싼 입장차 역시 전혀 좁혀지지 않아 배상금 지급을 위한 일본 전범기업 자산 매각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특히 아베 정권은 각종 국내 정치적 스캔들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도쿄올림픽 연기까지 겹치면서 한·일 관계 개선에 의지를 보이기 힘든 상태다. 아베 정권은 한국과 외교적 갈등을 벌여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행태를 자주 보여 왔다. 한국 역시 4·15 총선을 앞두고 있어 한·일 관계에 신경 쓸 여력이 많지 않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일 관계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양측의 근본적 입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양국이 직면한 현안이 너무 크기 때문에 관계 개선을 위한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반도 안보 관련 다자외교 행사도 줄줄이 취소될 조짐이다. 2002년부터 매년 여름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려 ‘샹그릴라 대화’로 불리는 아시아안보회의는 올해 처음으로 취소됐다. 샹그릴라 대화는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국가와 미국,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 국방장관들이 총출동해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하지만 동남아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이어지면서 결국 취소됐다.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 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역시 현재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베트남은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해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외교 또는 공무 목적 입국은 허용하지만 이 경우에도 일정 기간 격리 조치된다. 만약 올해 ARF가 취소될 경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에서 외무상으로 옮겨간 리선권의 다자외교 데뷔전도 1년 미뤄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 거의 모든 국제 행사가 순연되는 추세 같다”며 “현재로서는 무슨 회의가 예정대로 열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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