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신약 개발에 시간 필요… 기존 약물 재창출 방식 주로 시도
말라리아·에이즈 약은 효과 의문… 혈장 치료제 국내서 연내 임상
세포실험 단계 과잉기대 말아야… 시급성에 밀려 안전성 소홀 금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감염 확산을 막고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선 예방백신과 함께 특효약 개발이 시급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클리니컬트라이얼스(ClinicalTrials.gov)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으로 400여건의 코로나19 치료제 후보에 대한 인체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한 달 전(65건)에 비해 6배 넘게 증가했다. 국내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5개의 치료제 후보에 대한 7건의 임상시험이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아 시작됐고 8건은 추가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두드러지게 치료 효과가 확인된 약물은 국내외적으로 아직 없다.
렘데시비르, 2400명 임상결과 곧 공개
가장 활발히 시도되고 있는 방식이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이다. 이미 다른 질병 치료에 쓰이고 있거나 개발 중인 약물의 용도를 바꿔 코로나19의 치료 효과를 찾는 전략이다. 오리지널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과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가 코로나19 치료제로 현재로선 가장 유망하다.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 과정에 임상1·2상을 거쳐 안전성이 어느 정도 검증됐고 세포실험에서 코로나19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과(유전물질 RNA합성 억제)가 입증됐다. 우리나라 화학연구원이 후보 약물을 스크린한 결과 발굴한 8종 가운데 세포실험에서 약효가 가장 우수한 것으로 나왔다.
실제 소규모 환자 대상 연구에서 고무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는 ‘동정적 사용 승인(다른 치료법이 없는 이들 대상)’에 따라 렘데시비르를 투약받은 미국 유럽 일본 코로나19환자 53명의 임상결과가 발표됐다. 이 중 68%(36명)에서 호흡곤란 증상이 개선되는 등 임상적 효과가 나타났다. 정보분석업체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도 여러 치료제 중 렘데시비르가 가장 빨리, 2년 6개월 안에 89%의 성공률로 상용화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연구결과는 대부분 환자 수가 적은 데다 무작위대조실험(RCT)으로 설계되지 않은 한계가 있다.
렘데시비르의 코로나19 치료제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대규모 임상시험 데이터는 이르면 이달 중이나 다음 달 중순쯤 나올 전망이다.
현재 제약사(길리어드사이언스) 주도의 임상3상시험(시판 전 마지막 단계)이 한국 등 세계 13개국에서 중등증과 중증 코로나19 환자 4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당초 1000명이 목표였으나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폭발적 환자 증가로 참여자가 늘었다. 국내에선 국립중앙의료원(10명), 서울의료원(26명), 경북대병원(2명)에서 환자 투약이 이뤄졌다. 제약사에 따르면 중증 환자 2400명 대상 임상시험 결과는 이달 중 공개될 예정이다.
미국 NIH가 주도하는 연구자 임상시험도 미국 싱가포르 일본 한국 등에서 진행 중인데, 이 역시 당초 계획(경증 중증 394명)보다 참여자가 800명 이상으로 늘었다. 국내에선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치료 중인 환자 20명에게 투약됐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관계자는 “결과는 5월 중순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약사 측은 “두 개의 다국가, 다기관 임상시험에서 유의미한 데이터가 나오면 각국에 정식 코로나19치료제로 인 허가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말라리아약 효과·안전성 물음표
말라리아 예방 치료약인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도 주목된다. 화학연구원 약물 스크리닝 결과 세포실험에서 두 약물의 약효가 있으나 렘데시비르 보다는 떨어지는 걸로 분석됐다. 두 약물은 바이러스가 인체세포에 침투하기 위해 세포막과 융합하는 과정을 차단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약효가 밝혀지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주목받았다. 중국과 프랑스 일부 연구진은 이 약물들의 단독 사용 혹은 병용(아지트로마이신과 함께) 요법을 통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를 봤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최근 중중의 코로나19 환자에겐 하이드록시클로로퀸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연구보고가 있고, 치명적 심장 부작용으로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용에 신중할 필요성이 제기된 상태다.
아직 두 약물의 치료 효과와 안전성은 ‘안갯속’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 확보를 위한 추가 연구가 뒷받침돼야 코로나19 잠재적 치료제로 가능성을 따져 볼 수 있다. 국내에선 강남세브란스병원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코로나19예방 효과 확인을 위한 임상시험(2846명 대상)을 진행하고 있다.
에이즈치료제 효과 제한적
에이즈치료제인 칼레트라(로피나비르-리토나비르 복합제)는 당초 예상과 달리 ‘기대 이하’라는 평이 나온다. 이 약은 바이러스가 증식할 때 필요한 단백질 분해효소를 막아준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초창기 칼레트라로 치료 효과를 보인 다수 환자 사례가 보고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 NEJM에 실린 199명 환자 대상 중국 연구팀의 임상시험에선 칼레트라가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투약 시점이 13일로 늦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 빨리 투약한 환자들에서도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은 150명의 경증 코로나19 환자 대상으로 칼레트라와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병용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을 벌이고 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항바이러스제의 경우 지금까지 연구결과만 봐서는 렘데시비르가 가장 기대되고 칼레트라는 뒤떨어지는 걸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항바이러스제는 증상이 시작되고 4~5일 정도에 투약해야 효과적인데, 대부분 병이 많이 진행된 10~12일 이후 투약되고 있는 게 문제다. 또 치료제 단독 사용 보다는 병용 요법이 효과적인 걸로 판단되는 만큼 임상연구 설계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선 천식약과 구충제의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작업도 별도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국내외 약물 2500여종을 스크린해 세포실험 단계에서 효과가 기대되는 24종을 찾아냈다. 그 가운데 약효는 크고 독성은 적은 천식치료제 시클레소니드(상품명 알베스코)와 구충제 성분 니클로사마이드에 대한 코로나19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시클레소니드의 경우 고려대 구로병원 등이 경증의 코로나19 환자 141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 중이다. 또 촌충 등 장구충제로 개발된 니클로사마이드는 대웅테라퓨틱스와 최근 협약을 맺고 다음 달 중 영장류 실험을 진행한 뒤 7월 중 임상시험을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파스퇴르연구소 측은 “니클로사마이드가 세포실험에서 렘데시비르 대비 40배, 클로로퀸 대비 26배 높은 코로나19 항바이러스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니클로사마이드는 최근 호주 연구진이 세포실험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48시간 안에 죽이는 효과를 확인했다는 ‘이버멕틴’과는 다른 성분이다.
“세포단계 약효, 과대 해석 안돼”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을 활용한 항체 치료제와 혈장 치료제 개발도 향후 기대된다.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은 바이오기업 셀트리온과 함께 최근 항체 치료제 후보물질 38개를 공개했다. 연구원은 올해 안에 임상시험에 진입하고 내년 초 치료제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혈장 치료제는 다량의 완치자 혈액을 확보해 2~3개월 내에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일각에서 줄기세포와 면역세포(NK세포)로 코로나19 환자 치료 시도 계획을 밝혔으나 아직 임상전 단계에 그치고 있다.
후보 치료제의 약효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우주 교수는 “세포실험 단계에서 약효가 확인됐다고 해서 사람에게 똑같은 효과가 있으리란 법은 없는 만큼, 과대 해석을 낳아선 안된다”면서 “특히 일부 약물은 사람에게 독성과 부작용을 보이는 걸로 나타나 시급성에 밀려 안전성이 소홀히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역당국도 신중한 입장이다. 특히 고무적 결과가 나오고 있는 렘데시비르의 경우 더 많은 수의 환자에게 다양하게 적용돼야 임상 효과를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어떤 약재가 효과적일지에 대해 아직 일치된 의견이 없는 상황”이라며 “환자의 특성과 기저질환, 면역상태, 조건에 따라 치료약의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