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고 사는 마당에 장미 좀 안 팔리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경기도 고양 절화농장 ‘장미이야기’의 탁석오 대표는 말끝을 흐렸다. 꽃꽂이, 꽃다발, 화환 등의 용도로 줄기째 잘라 쓰는 꽃을 절화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졸업·입학 시즌이 자취를 감춰 절화농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두 달치 전기료 700만원이 밀렸고 매출은 4분의 1 토막이 났다. 이대로면 올해 내내 빚에 시달려야 한다.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
탁 대표는 40년간 장미만 바라보고 살았다.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과 고양 일산 호수공원의 장미공원 조성 사업에도 참여했다. 장미는 수확기가 정해져 있어 분화와 달리 출하 시기를 조절하기 어렵다. 해마다 졸업·입학철에 맞춰 출하를 준비해온 터라 올해처럼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뾰족한 대책이 없다. 수요는 없는데 넘치는 생산량에 가격은 곤두박질했다. 1속(10송이)에 1만원도 넘던 장미가 1300원에 팔렸다. 탁 대표는 농장 면적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장미밭을 갈아엎었다.
탁 대표는 인근 화훼농민과 함께 애지중지 재배해온 장미로 꽃바구니를 만들었다. 고양 명지병원과 일산병원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에게 전달했다. 누구보다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더 힘겨운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그가 바이러스에 맞서는 방법이었다.
사진·글=최현규 기자 frost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