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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슬기로운 경제학자 사용법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이 갖는 큰 매력 중 하나는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에 관해 연구한다는 사실이다. 하루하루 수많은 경제적 의사결정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에 우연히 승차한 택시의 기사든, 주말에 찾아뵌 부모든, 어느 누구와도 현실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경제학자로서 누릴 수 있는 큰 축복이다.

경제학이 갖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특징은 명확한 정답이 없는 문제를 연구한다는 사실이다. 자연의 법칙을 좇고 응용하는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와는 달리 인간의 행위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의 특성상 한 가지 불변법칙이 존재할 수 없기에 최고의 대가가 정립한 이론조차도 끊임없는 검증을 통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진화하고 변형되기 마련이다. 경제변수 간의 관계는 어느 것 하나 일정한 법칙을 따르는 것이 없으니 연구 주제는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시대와 상황에 적합한 유사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어느 특정 이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경제학 과목을 수강하던 학부 시절 한 은사께서는 본인의 학부 과정 당시에는 경제학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됐다고 믿었었고, 조금 더 깊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석사과정 시절에는 경제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으며, 박사과정을 마칠 즈음에는 비로소 본인만 모르는 게 아니고 남들도 모두 아무것도 모르고 있더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해주신 말씀이지만 경제학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 듯싶다.

일례로 필자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주옥같은 거시경제학 교과서의 저자이자 당시 수석이코노미스트였던 올리비에 블랑샤 교수에게서 많은 경제학적 지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우리는 아무것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다”는 자세로 개별 사안들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그의 재임기간 중 IMF는 수십 년간 신봉해온 국제적 자본이동 자유화 정책의 혜택에 대한 실증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이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수정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당시 겪은 바 있는 IMF 구제금융의 과도한 긴축재정 처방이 실제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틀림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는 결국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함에서 비롯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는 경제학의 이러한 특징들이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히 나타난다. 우리가 쉽게 과학자나 공학자 행세를 하기 힘든 것과 달리, 비교적 얕은 배경지식으로도 경제 전문가로 변신하기는 쉽다. 정통 경제학자 중에서도 세부 전공에 대한 깊은 연구 없이 통화정책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재정정책 전문가가 되기도 하며, 필요하면 노동경제학자도 되었다가 금융 전문가가 되는 이들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학식 있는 경제학자들이 해당 정책의 득과 실을 이론적으로 또는 실증적으로 정확하게 추정해보려 시도해보기도 전에,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그토록 찾았다던 외팔이 경제학자들은 이미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데 일조하고 있곤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믿을 수 있는 무모한 용기는 무지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결국 판단은 경제학자를 소비하는 국민과 위정자들의 몫이겠지만, 주제를 불문하고 확신에 찬 주장으로 사이다같이 시원하게 정책 제언을 하는 분들은 일단 의심해 보는 게 슬기롭게 경제학자를 사용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안재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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