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3’에 출연했던 남태평양 피지 출신의 첫 성악가 소코(31)는 그의 이름을 알린 첫 경연의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막상 무대에 서려니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긴장이 앞섰다. 이름 있는 참가자들 앞에서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달란트 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다’며 ‘당당하게 나가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하나님께 짧은 기도를 드렸다.
부산 고신대학교에서 최근 만난 소코는 “첫 경연 전 짧은 순간 드렸던 기도에서부터 제 팬텀싱어 경험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방송에 나가진 않았지만, 소코가 한국 가곡 ‘첫사랑’으로 첫 무대에 서기 전 다른 참가자가 같은 곡을 들고 나왔다. 소코 입장에선 굉장히 부담스러운 전개였다. 소코는 “74명 중 절반이 떨어지는 무대였다”며 “다른 분이 그 곡을 부르는데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고 회상했다. 곡을 변경할까도 고민했지만 그대로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걱정 대신 “제가 첫 소리를 내기 전에 주님 미리 가 계셔 주세요. 관객들, 심사위원들 가운데 계셔서 먼저 그들 마음을 움직여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노래를 끝내자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나 곧 심사위원들의 감탄 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 “(한국 노래) 가사가 주는 감동을 외국 사람에게 받을 줄 몰랐다” “황홀한 시간이었다”는 등 심사위원들의 극찬이 뒤따랐다. 소코는 “사실 어떻게 노래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없다. 반주 소리만 기억이 난다”며 “마음속으로 ‘끝났다’하고 있는데 심사위원들이 우시더라.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던 소코는 음악교육 인프라가 열악한 피지를 떠나 2009년 고신대로 유학 왔다. 고신대 음악과 출신으로 피지에 파송된 한국인 선교사를 통해 고신대를 알게 됐다고 한다. 목사인 아버지는 소코가 신학을 하길 바랐지만, 자신의 소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코는 “피지에선 노래는 취미로 하는 분위기”라며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다들 비웃었다”고 말했다. 그는 “재밌는 건 제 풀네임이 ‘수니아 소코 불리바바랑이’인데 불리는 공부, 바바랑이는 유학이란 뜻이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인데 이름대로 외국에서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소코는 한국에 와서 안민 총장(당시 음악과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안 총장님이 첫 수업 때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며 “‘소리도 좋고, 색깔도 좋다. 그런데 나쁜 습관이 많이 배어 있어서 고쳐야겠다’고 하셨다. 그땐 호흡 쓰는 법도 몰랐고 노래도 생목으로 했다”며 웃었다. 소코는 고신대 음악과와 같은 대학교 음악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인도하신단 생각이 많이 든다”며 “하나님께선 늘 제가 원했던 것보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 전 그냥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팬텀싱어 3’에 출연한 것도 하나님의 이끄심이 컸다. 팬텀싱어 시즌 1·2를 모두 봤지만, 자신이 출연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루는 시즌3 포스터를 봤는데, 느낌이 달랐다. 소코는 “보는 순간 저기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고민하며 기도하던 차에 jtbc에서 학교 음악과로 연락이 왔다. 소코라는 학생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연결 가능한지 문의했다고 한다. 소코는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팬텀싱어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내 의지로 나가는 게 아니라 주님이 인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며 “이게 ‘그린라이트’라고 생각했다. 학교 측에서도 기분 좋게 허락해줬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소코는 최종 결선 12인에 들진 못했다. 그러나 소코는 “아쉬움도 많지만 여기서 떨어지는 게 제가 가는 길과도 맞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소코는 고향 피지에서 음악으로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픈 꿈이 있다. 음악 교육을 활성화하고 노래하고픈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고 싶다.
실제 방송이 나간 뒤 피지에 있는 젊은 친구들이 “피지 사람이 저렇게 큰 무대에 설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응원 메시지를 많이 보내왔다. 소코는 “지금 시대는 그냥 가르치는 시대가 아니다. 보여줘야 하는 시대”라며 “팬텀싱어는 훗날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