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아야 소피아와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터키 최고행정법원은 이스탄불 성소피아(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바꾸라는 판결을 내렸다. 터키 이슬람계는 환영했지만 세계 교회와 미국, 유럽연합 등은 판결을 비판했다. 한국인에게도 아야 소피아는 유명하다. 터키 여행이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둘러봤을 터다. 1500년 가까이 되는 역사적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 신기했고, 시대와 종교에 따라 바뀌었던 아야 소피아의 운명도 기구했다. 기독교인들에게 이번 결정은 그래서 더 아쉽다.

아야 소피아 탄생은 532년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당시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에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를 건립할 것을 지시한 것이 계기였다. 교회당은 이후 5년 만인 537년 완공됐다. ‘성스러운 지혜’란 뜻이 있는 아야 소피아는 그 웅장한 규모에 탄복하게 된다. 모자이크와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된 내부와 천장은 독특하다. 천장은 거대한 돔으로 덮여 있는데, 이 돔은 바닥에서 55.6m 높이에 달하며, 40개의 아치형 창문으로 이뤄진 거대한 아케이드 위에 올라가 있다. 내부를 돔 형식으로 설계한 이유는 교회의 하나 됨, 공동체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신약성경 에베소서에 나오는 교회의 원리를 그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아야 소피아는 건립 이후 900여년 간 정교회의 대표 성당으로 역할을 해오다, 1453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이후 약 500년간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돼 쓰였다. 이후 20세기 초 터키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집권하면서 아야 소피아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세속주의를 표방했던 케말 아타튀르크는 바닥에 깔려 있던 모스크의 카펫을 치웠고, 이로 인해 원래 장식돼 있던 대리석 옴팔리온도 드러났다. 이때 오스만제국 시절 교회 색깔을 지우기 위해 칠했던 회칠도 다시 벗겨내면서 옛 교회 모자이크들이 되살아났다. 아야 소피아는 1935년 박물관으로 정식 개장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아야 소피아와 관련해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황금의 입’이라 불리던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이다. 영어로는 존 크리소스톰으로 불리는 이 사람은 서로마제국 밀라노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와 함께 쌍벽을 이뤘던 동로마제국의 위대한 설교가였다. 그는 뛰어난 웅변가였을 뿐 아니라 ‘제국 종교’로서의 지위를 바탕으로 부유해지고 나태해진 교회를 향해 날카로운 예언자적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복음서에 나타난 도덕적이며 검소한 생활을 교회와 신자들이 실천하도록 촉구했다. 아야 소피아 강단은 이렇게 유력자와 부패한 성직자, 향락에 빠진 시민을 향해 섬뜩하고 단호한 하나님의 경고를 울렸다.

하지만 크리소스토무스는 당시 교권주의자들과 황후였던 아일리아 에우독시아에게 미움을 받았다. 에우독시아는 자신의 사치와 방탕으로 크리소스토무스에게 공공연하게 비판을 받아왔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에오독시아는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며 유배시켰다. 마치 세례 요한을 보는 것 같다. 교회 역사가인 유스토 곤잘레스는 크리소스토무스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 칭했다.

강직하면서도 평화를 추구했던 크리소스토무스는 귀양을 받아들였고 유배지에서도 글을 쓰며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마지막 유배지였던 흑해 해변의 작은 어촌으로 향하는 길에서 건강이 악화돼 중병을 얻었다. 그는 임종 직전 작은 교회당에서 전 생애에서 가장 짧고 뛰어난 설교를 전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아멘.”

웅장한 아야 소피아와 그 강단에서 복음을 전했던 크리소스토무스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건물은 건물일 뿐이다. 한국교회는 뭘 추구해야 할까. 웅장한 건물과 눈에 보이는 축복인가. 아니면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가. 무엇이 성스러운 지혜인가. 코로나19는 이제 그 답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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