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제힘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앞서 다 일하셨습니다.”
이정정(사진) 사모는 80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충남 천안 예수자랑선교센터에 모인 감리교 홀사모들은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를 떠나보내는 아쉬운 표정까지 숨기진 못했다.
이 사모는 1997년 남편 배상길 목사가 암으로 별세한 뒤 홀사모가 됐다. 2001년 감리교 홀사모 공동체인 예수자랑사모선교회(예자회)를 설립한 후 19년간 회장으로 섬겨왔다. 최근 이임식을 끝으로 정든 예자회를 떠난 그를 지난 9일 경기도 용인 수지에 있는 목양교회에서 만났다.
목양교회는 이 사모가 남편 배 목사와 함께 기도하며 눈물로 세운 교회다. 교회를 떠난 후 23년이 흐른 만큼 그를 알아보거나 기억하는 이는 없었지만, 남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교회를 바라보며 소회를 털어놨다.
이 사모는 “남편은 자신의 비석에 ‘교회만 사랑하다 못다 하고 간 목사’라고 새기라고 할 정도로 일생을 교회를 위해 살았다. 그런 남편을 일찍 부르신 하나님이 원망스러워 3년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남편이 떠난 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500~600통씩 오던 성탄카드도 뚝 끊겼다. 이 사모는 빈 우체통을 보며 자신과 똑같은 상처를 입은 홀사모들을 위로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무슨 말을 편지에 담을까 고심하던 끝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지구촌의 간호사로 쓰신다면 사모님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라고 적었다. 홀사모는 남편을 잃은 초라한 과부가 아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모가 보낸 성탄카드를 받은 홀사모들이 하나둘 답장을 해왔다. 남편이 별세한 뒤 쫓기듯 교회에서 나온 사모, 하나님 앞에 엎드려 발버둥 치는 사모들을 찾아가 위로했다. 보리밥에 된장찌개를 놓고 함께 먹으며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 나갔다.
이 사모는 2001년 예자회를 설립하고 가장 먼저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사모들은 콩으로 메주를 쒀서 장을 담그고 된장을 팔았다.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은 수익금으로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적은 금액이지만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모든 자녀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2015년엔 홀사모들의 쉼터인 예자회 선교센터를 건립했고, 사모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했다.
이 사모는 “젊은 사모들이 아르바이트하며 기도로 자녀들을 키워내는 모습을 지켜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자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홀사모들이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다”면서 “쌀통에 쌀 떨어지면 하나님이 먼저 아신다. 우리에겐 하나님이 남편이고 보호자이지 않나. 힘든 시기지만 말씀 붙들고, 당당하게 이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당부했다.
용인=글·사진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