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너희는 왕의 종이 될 것이다



2020년 7월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그럼에도 야당 반대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해 공수처장을 비롯해 검사, 수사관 등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 추천위는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회장, 여당·야당(교섭단체) 추천 각 2명 등 7명으로 구성되고, 6명 이상 찬성으로 후보자 2명을 추천하며, 대통령은 그중 1명을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수처장으로 임명한다. 여당은 “야당이 위원을 추천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여당에 추천 권한을 넘길 수 있다”는 취지의 국회 규칙을 만들어 법률을 무력화하려 한다. 또 야당 추천위원을 아예 줄이거나 ‘6명 이상’ 의결정족수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있다.

검찰 등 수사기관은 고위 공직자의 뇌물수수나 정치자금법 위반 등을 수사하는 경우 공수처에 통보해야 하고, 공수처장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임의로 이첩받아 수사할 수 있다. 공수처장 임명이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대통령 뜻에 의해 중단될 수 있는 구조다. 또 공수처는 판사·검사의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에 대해 수사·기소할 수 있다. 법치의 최후 보루인 판사의 재판과 검사의 수사를 압박해 대통령 친위부대를 만들 수 있는 구조다. 공수처는 중국 감찰위원회가 모델이라는 주장도 있다. 재판과 수사의 공정성을 침해하며,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

공수처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는데도 대법원은 ‘거짓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다’는 판례를 만들어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면죄부를 줬다. 모든 심급에서 여권 인사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이어진다. 친문이면 무죄, 반문이면 유죄라는 말이 회자된다. 법무부 장관은 정권에 칼을 겨누던 검사들을 대부분 좌천시켰다. 채널A 기자와 검사의 유착 의혹 수사와 관련해 법무부 장관은 공정 수사를 주장하는 검찰총장에게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지휘했다. 정권이 검찰 수사에 쉽게 개입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

연초에는 여권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개정 법률은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는 등 경찰의 수사 권한을 대폭 확대했다. 사법경찰은 여권의 영향을 크게 받는 행정경찰의 지휘를 받는다. 경찰은 드루킹 여론조작 의혹 사건에서 증거인멸을 방치했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서 야당 후보가 공천된 날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은 수사의 공정성을 후퇴시키고, 인권보장을 위해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인정한 역사성에도 반한다. 경찰이 중국 공안(경찰)을 닮아가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는 공수처 설치와 함께 법치의 지주목(支柱木)인 국가 수사의 틀을 바꿔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기원전 11세기 이스라엘 백성이 강력한 왕을 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왕이 백성의 자유와 재산을 빼앗고, 백성을 종으로 삼으며, 전쟁의 도구로 쓸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사무엘상 8장 11∼17절).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임의로 지배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고 말씀하셨다(마태 20장 25절). 루소도 ‘사회계약론’에서 “모든 정부는 일단 공적인 힘을 위임받으면 얼마 안 있어 주권을 가로챈다”고 했다. 권력 집중과 독재를 경계하는 말씀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국회 연설에서 협치를 주장했다. 공수처장 임명을 위해 관련법을 개정할 것이 아니라 야당이 찬성할 수 있는 중립적 인사를 임명하는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진정한 민주와 법치의 길은 실천하기 힘든 좁은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길이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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