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습관처럼 노래 않듯, 성령과 함께 춤을



“제가 노래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습관처럼 부르지 않는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습관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제 노래에 제가 울컥해요. 노래 가사 하나하나를 그냥 부른 적이 없어요. 무대에 서서 노래할 때는 그 노래에 제 마음을 숨김없이 쏟아부어요.”

‘안부’를 비롯해 ‘청춘’ ‘동백꽃’ ‘낭랑18세’ 등의 노래를 담아 신작 음반을 발표한 가수 이선희가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전한 고백이다. 한 번도 습관처럼 노래를 부른 적 없다는 그의 말에 나는 큰 도전을 받았다. 우리 교회 장로님이신 남진 장로의 콘서트뿐 아니라 조용필 이선희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의 콘서트에 가 본 적이 있다.

무대에 서 있는 그들은 황야를 달리는 군마가 되고 때론 동산을 뛰노는 사슴이 되어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청중은 그들의 예술적 포로가 되어 함께 춤추고 환호한다. 그만큼 그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온 힘을 다해 노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의 설교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진정 목회자가 매 주일 강단에 설 때마다 성도들로 하여금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매 주일 돌아오는 주일예배 매뉴얼에 따라 습관처럼 설교를 하고 있진 않은가. 지금까지는 설교학의 대가 해돈 로빈슨 교수의 ‘강해 설교’ ‘명제 설교’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목회자가 전하는 품격의 언어와 우아한 행위를 통해 고상하신 하나님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이런 설교학이 한동안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의 강단을 지배해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설교가 정형화되기 시작했고 화석화됐다. 여기에서 조금씩 이탈하기 시작한 설교 형태가 있다. 개혁주의 설교학자 조엘 비키 목사가 말하는 ‘솜사탕 설교’ ‘지성 위주의 설교’다. 솜사탕 설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만 해주고 지성 위주의 설교는 청중을 우쭐하게 한다.

비키 목사는 두 설교 형태를 비판하며 설교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감정이 설교자의 감정을 지배하고 움직여서 청중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학자 루돌프 보렌은 설교 행위를 ‘성령과 함께 춤을 추고 놀이하는 행위’로 표현했고, 데이비드 버트릭 교수는 설교 행위가 ‘하나님의 신비의 가장자리에서 춤추는 사역’이라고 했다.

또한 신학자 루돌프 오토는 설교자가 강단에 올라가는 순간 강력하고도 압도적인 신적 경험, 두려운 신비를 경험해야 한다고 했다. 설교자가 두려운 신비를 느낄 때 청중에게 전율과 매혹이라는 반응을 나타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요한 실리에 교수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어릿광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 설교는 청중을 향해 성령의 언어적 임재 사건이 돼야 하고 성령의 발화사건이 돼야 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는 우아한 언어와 겉만 번지르르한 모습을 갖고는 성도들의 가슴에 전율과 매혹을 가져다줄 수 없다. 설교자가 거룩한 광대가 되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고 전해지는 설교를 해야 한다. 성경 본문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감정이 설교자의 감정에 전이가 되어 성령의 거룩한 퍼포먼스요, 성령 언어의 임재 사건으로 나타나야 한다.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인들도 습관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하물며 영혼을 구원하는 설교자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한국교회의 강단이 새롭게 되고 생명력이 흘러넘쳐 매 주일 성도들이 말씀을 사모하며 예배당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꿈꿔보자.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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