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윤유선] “내 삶은 ‘드림’… 사익보다 공의를 세우는 크리스천 되고 싶다”

배우 윤유선이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배우로서의 삶과 신앙, 희망 나눔의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윤유선이 2012년 10월 기아대책 ‘스톱헝거(Stop hunger) 캠페인’의 일환으로 말라위를 방문해 결연아동인 패트릭을 씻기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윤유선의 후원으로 2014년 9월 말라위 핀예마을에 설립된 희망커뮤니티교회. 기아대책 제공


촬영장을 놀이터 삼아 뛰놀던 다섯 살 아역 배우는 어느새 필모그래피에 100개 가까운 작품명을 쌓아 올린 47년 차 베테랑이 됐다. ‘아역’이란 수식어를 떼고도 수년이 흐른 뒤에야 ‘아, 이렇게 생을 연기로 채워가겠구나’ 싶었다는 배우는 살아온 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20대 후반이 돼서야 신앙을 품었다. 불안정이 가져온 두려움, 연약함을 딛고 일어서게 한 믿음, 사랑을 흘려보내 발견한 희망 등 그가 펼쳐 온 연기만큼이나 다양한 장면이 배우 윤유선(51)의 삶을 채우고 있었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지난달 28일 만난 윤유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가운데 깨달은 인간의 연약함 이야기부터 꺼냈다. 지난 2월 유학 중인 자녀들을 만나러 출국했던 그는 해외에서도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자 귀국 후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그동안 얼마나 평안하고 안락한 환경 속에 살아왔는지 깨달았어요. 거대한 위기 앞에 인간의 힘이란 게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느꼈지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날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구나’란 생각도 하게 됐고요.”

비슷한 시기에 연기를 시작했던 아역 배우들이 촬영 현장을 떠날 때도 그는 새로운 배우들과 새로운 현장에서 작품을 만들어 가는 재미에 매료돼 고됨을 잊고 살았다. 주연을 맡았던 ‘두 여자 이야기’(1994)가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 땐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연기에 대한 소중함을 깊이 새기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배우로서 더 화려한 조명을 받게 됐을 때 위기가 찾아왔다.

“연기, 인생, 결혼 모든 게 어렵게 느껴졌어요.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열정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어요. 설교를 듣는데 내 마음은 늘 갈대처럼 흔들리고 사랑받기 위해 한없이 이기적이기만 한데 예수님의 우릴 향한 사랑은 끝이 없다는 게 가슴을 쳤어요.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앙을 향한 새로운 고민이 생기자 일상이 성경공부 새벽기도회로 채워지더라고요.”

하나님을 생의 연출자로 받아들이면서 세계관은 ‘호러’에서 ‘멜로’ 장르로 바뀌었다. 작품 활동의 불안정성, 작품 속 배역을 선택하고 선택받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채워져 있던 자리에 ‘계획하심’이 스며들었다. 윤유선은 “중간 과정에서 누군가의 기준과 잣대로 ‘실패’란 꼬리표가 붙더라도 결국 그 끝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열매를 기대하는 맘이 생기고부턴 두려움이 사라졌다”며 미소를 지었다.

8년 전 기아대책(회장 유원식)과 처음 연을 맺은 이후 필리핀 말라위 마다가스카르 봉사활동에 동행하면서 그는 희망으로의 새로운 여정을 발견했다. 하나님과의 소통, 신앙적 깨달음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일까. TV 화면으로 접했던, 가슴 벅찬 감동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말라위의 한 마을을 찾아갔는데 사람들은 죄다 술에 취해 있고 귀여워 보일 줄 알았던 아이들은 표정 없이 사람들을 거칠게 대하며 병들어 죽은 닭을 서로 먹겠다고 싸웠어요.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지요. ‘하나님 왜 저를 여기 오게 하셨어요. 아무런 희망도 못 보겠어요’라고 속으로 얼마나 외쳤는지 몰라요.”

반전은 여정의 마지막 날 찾아왔다. 마을 추장이 “요구사항이 있다”며 기아대책 담당자와 선교사를 불렀다. ‘보나 마나 촬영을 대가로 돈이나 술을 원하겠지’ 싶었다.

“교회를 지어 주시오. 아이들과 청년들이 아무 생각 없이 마구 살아가고 있소. 신앙을 통해 이들의 생각을 바꿔줘야 하오.”

추장의 말은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2년 뒤 말라위 핀예마을엔 붉은 벽돌 건물에 흰색 십자가가 우뚝 선 교회가 세워졌다. 입구엔 후원자 이름 ‘윤유선’이 새겨진 작은 현판이 붙었다. 그 후에도 국내외 긴급구호, 아동 후원에 동참해 온 그는 지난달 기아대책 필란트로피 클럽(1억원 이상 기부 또는 약정한 후원자)의 200호 회원이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구·경북 지역 아동들이 위기에 처했을 땐 마스크 손소독제 식료품이 담긴 ‘안전키트 상자’를 보내는 데 힘을 보탰다. 개그우먼 이성미 권사를 신앙의 롤모델로 꼽는 그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적 정의를 세우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크리스천답게 살아내는 게 기본이에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도 주셨잖아요.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열매 맺는 삶이 됐으면 좋겠어요. 끝까지 하나님을 놓치지 않을 거예요(웃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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