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 “하나님 우리 잘해봅시다” 열여덟에 조국 떠난 미아의 도전

라코토베 미아씨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그동안 한국에 머물며 하나님께 받은 소명과 함께 부친의 사역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미아씨의 부친인 라코토베 R 두다해리수아 목사가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조아라파난테나나암부히푸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라코토베 미아씨 제공
 
조아라파난테나나암부히푸교회 성도들이 주일예배를 드리며 찬양하는 모습. 라코토베 미아씨 제공


2010년 아프리카 대륙 동쪽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열일곱 살의 라코토베 미아에게 한국의 한동대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4년 장학금의 기회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목회하시는 아버지를 통해 한국이 기독교인의 나라, 기도와 복음으로 발달한 나라란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학업을 이어가기엔 열일곱 소녀에겐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평소 아버지가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니 어떤 일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격려한 탓일까.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주저함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11년 한국에 와 10년이 지난 지금, 글쓰기를 좋아해 작가가 되고 싶었던 미아(28)씨는 두란노서원의 말씀묵상지 ‘생명의 삶’ 영어판 편집자로 일하며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만난 미아씨는 이따금 사전 인터뷰 질문에 꼼꼼히 적어온 쪽지를 봐가며 유창한 한국말로 막힘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한국과 인연이 생긴 이야기부터 물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목회자 회의에 참석하신 아버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동대 교수님을 한 분 만났다며 다짜고짜 입학서류를 한번 준비해보라고 하셨다. 미아씨는 “평소엔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시며 별로 간섭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였던 터라 왜 그러실까 하면서도 순종하는 맘으로 준비한 게 지금에 이르렀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도착한 한동대 기숙사에서 아프리카 소녀의 한국생활이 시작됐다. 함께 온 아버지가 귀국한 뒤 외로움과 두려움이 갑작스레 몰려왔을 때도 미아씨는 속으로 ‘이제 하나님과 저뿐입니다. 우리끼리 잘해봅시다’라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섬나라로 국제관계가 중요한 고국에 도움이 되고자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에 문화예술이 미치는 중요성도 클 것 같아 시각디자인도 함께 전공했다. 2018년엔 이화여대 국제대학원까지 졸업했다. 글쓰기와 책을 좋아하는 사람다웠다. 미아씨도 “어릴 때부터 모든 걸 깊이 생각하는,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학문을 탐구하는 데 몰두했던 만큼 신앙생활은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그러자 열세 살 무렵의 일화를 이야기해줬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성경책보단 다른 책이 더 좋았던 그에게 아버지는 성경은 보고 있느냐고 채근했다. 그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아예 성경을 기반으로 한 소설책을 하나 써서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더는 얘기하지 말라고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소설을 쓰려니 예수와 제자의 삶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때부터 매일 성경책을 들고 집 뒷마당으로 가 점심부터 해가 질 때까지 성경을 읽었다. 그는 “마태복음을 읽으며 예수님의 실제 모습을 알게 됐고, 요한이 예수님 품에 기대는 구절을 읽을 땐 나도 하나님 품에 기댈 수 있단 사실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장녀로 오빠가 있었으면 했던 그에게 그때부터 하나님은 오빠 같은 친밀한 존재가 됐다.

곁에서 그의 신앙을 북돋아 준 아버지의 역할도 컸다. 부친인 라코토베 R 두다해리수아 목사는 개혁주의 신학의 장로교 목회자로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에 있는 조아라파난테나나암부히푸교회를 맡고 있다. 출석 성도만 2만명에 이르고 초등학교도 운영한다. 현재는 마다가스카르 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18개 부족을 위해 성경책을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직접 손으로 써가며 번역하고 있다고 했다.

미아씨는 “옆에서 본 아버지는 주님 없이는 단 1초도 못 사는 목회자, 겸손하면서도 용감한 목회자”라면서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신 아버지 덕분에 예수님을 깊이 내 안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월부터 ‘생명의삶’ 영어판 ‘리빙라이프’의 편집자로 일하게 되면서 그도 아버지처럼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내성적이라 다른 사람과 인터뷰하는 게 다소 어렵지만 지금과 같은 업무를 하게 된 건 제겐 기적과 같은 일”이라며 “매 순간 주님의 말씀을 다루며 좋아하는 글을 쓰고, 다른 이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할 수 있어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5년 전부터 출석한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선 영어예배 찬양팀 일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하나님께 받은 소명, 부르심을 물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담아주신 달란트가 있다고 믿는다”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각자에게 담아주신 그 가능성을 다른 이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주로 공동체 안에서만 신앙생활을 할 뿐 개인의 삶에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모르는 고국 사람들에게 개인의 신앙 성장을 돕는 ‘큐티 문화’도 전파하고픈 꿈도 있다.

미아씨가 가장 좋아하는 고국 말은 ‘미앙갈리(Miangaly)’다. 그는 “무엇을 해도, 그것이 평범한 일일지라도 예술처럼 꼼꼼하고 우아하게 한다는 뜻”이라며 “아버지의 성경번역 작업과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신앙성장 모두 ‘미앙갈리’하게 해 하나님 뜻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국성도들도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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