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전 감람산 오른 최초의 한국인은 무슨 기도를 했을까

1928년 예루살렘 감람산에 올랐던 한국인들. 오른쪽부터 양주삼 회장, 김활란 신흥우 정인과 총무, 윌리엄 노블·새뮤얼 모펫 선교사. 옥성득 교수 제공


세계 각지에서 온 여성 지도자들이 1928년 예루살렘 아우구스타빅토리아교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옥성득 교수 제공




아우구스타빅토리아교회의 현재 모습. 이강근 목사 제공


2만770㎢ 면적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 우리나라 전라남북도를 합친 정도인 이 나라에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매년 5만명이 넘는 한국인 관광객이 몰렸다. 성지순례를 위해서였다.

예수가 태어나고 자란 베들레헴과 나사렛, 공생애 기간 제자들과 함께 살며 이적을 행하셨던 곳 모두 이스라엘에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걸었던 길도 성지의 일부다. 예수의 숨결을 느끼며 묵상하려는 기독교인들은 늘 이스라엘을 찾고 싶어한다.

최근 페이스북에 흑백사진 한 장이 올라와 관심을 끌었다. 한 명의 여성과 다섯 명의 남성이 정장을 입고 야외에서 찍은 사진이다. 남성 중 두 명은 백인이고 나머지는 동양인이다. 바로 한국인 중 최초로 이스라엘 성지를 찾았던 이들의 사진이다. 과연 이들은 누구이며 방문 시기는 언제였을까.

1928년 양주삼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회장과 김활란(YWCA) 신흥우(YMCA) 정인과(조선주일학교연합회) 총무가 사진의 주인공이다. 장소는 감람산이었다.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해발 800m 높이의 감람산은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한 곳이다.

이곳 아우구스타빅토리아교회에서 1928년 3월 24일부터 4월 8일까지 세계선교위원회(IMC)가 주최한 예루살렘 국제선교대회가 진행됐다. IMC는 1948년 창립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모태다.

당시 선교대회에는 51개국에서 231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감람산에 처음 올랐던 한국인들도 이 회의에 파견된 교회 대표였다. 당시 이들이 어떻게 이스라엘까지 이동했는지 확인되지 않지만 이미 중국 상하이와 유럽 주요 도시를 잇는 정기 배편이 있었고 기차를 이용하면 프랑스까지도 갈 수 있었다.

아우구스타빅토리아교회는 이스라엘에서 몇 안 되는 개신교회로 규모가 가장 컸다. 당시 세계교회 대표들은 교회 옆에 지은 임시 막사와 천막에서 지내며 회의에 참석했다.

이 대회는 훗날 한국의 농촌선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앞서 191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렸던 에든버러선교대회와도 자주 비교된다. 에든버러선교대회는 백인 남성 중심의 선교대회였다. 예루살렘대회는 달랐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회 대표도 다수 참석했으며, 여성 참석자도 많았다. 유색인종과 여성이 선교의 전면에 등장한 선교대회였다. 선교대회에서는 농촌선교 방안을 모색하고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대회에 참석한 한국인들은 일제가 발급한 여권을 들고 있었지만,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미래를 농촌 근대화에서 찾기 위해 노력했다. 선교대회가 끝난 뒤 한국 대표단은 농촌 근대화의 모범국가였던 덴마크로 떠나 보름 가까이 농촌을 답사했다. 예루살렘대회에서 다뤄진 농촌 선교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국의 교회 중 75%가 농촌에 있었다. 농촌과 교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실제로 예루살렘대회와 덴마크 견학 이후 한국의 YMCA와 YWCA, 장로회와 감리회 등은 농촌 선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장로교는 1933년 배민수 목사가 미국에서 확보한 기금을 바탕으로 총회 본부 안에 농촌부를 상설기구로 설치했다.

옥성득 미국 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는 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예루살렘대회 이후 사회문제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던 보수적 성향의 장로교회가 농촌문제에 직접적인 관심을 가졌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며 “이 대회 이후 선교가 사회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20년대 말 감람산에 올랐던 이들의 소감도 남아있다. 김흥수 목원대 명예교수가 쓴 ‘손정도, 애국적 생애’에는 선교대회 중 틈틈이 기독교 유적을 찾았던 김활란 총무의 소회가 일부 기록돼 있다. 김 교수는 김 총무가 귀국 후 한 잡지에 기고한 기행문을 책에 인용했다.

“먼저 감람산을 올라가 보았다. 역시 보잘것 없는 산이다. 양귀비꽃이 많고 아카시아와 감람나무가 있다. 멀리 요단강을 바라보았다. 예수의 세례 받은 곳이라 퍽 시적 정취가 많은 곳인 듯하나 실상은 쓸쓸한 작은 하천에 불과하다.”

지금도 아우구스타빅토리아교회는 그 자리에 건재하다. 이곳에서는 토요일마다 이스라엘 유대한인교회(이강근 목사) 예배가 진행된다. 오는 23일부터 이스라엘 정부가 단체 관광객의 이스라엘 입국을 허용한다. 이스라엘 방문을 원하는 여행객은 비행기 탑승 전 이동형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고 코로나19 음성을 증명해야 하고, 텔아비브 공항 도착 뒤 혈청 검사를 받아야 한다. 백신 접종자만 여행을 허용하겠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도 백신을 접종한 뒤에는 이스라엘 성지 방문을 할 수 있다.

이강근 목사는 “이스라엘의 성지는 예수님이 계시던 때나 한국인들이 처음 방문했던 1928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며 “이스라엘 방문이 재개된 뒤에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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