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정신의학 뿌리에 신학·심리학 더해 인격을 변화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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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기독교가 가장 사랑한 상담자’로 불리는 스위스의 폴 투르니에(1898~1986·아래 사진). 그는 내과 의사였지만 신학과 정신의학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육체적 치료뿐 아니라 정신적, 영적, 심리적인 관점에서 환자들을 진료했다. 이런 통합적 심리치료가 사람을 인격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발견한 후 ‘인격 의학’을 창시했다.

그는 인격 의학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격 의학이란 과학적, 기술적 방법을 모두 사용해 질병을 치유하는 동시에 그 사람 안에 조화롭게 발달한 하나의 인격을 창조해 내려는 의학을 말한다.…인간이란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만 참 인격이 되므로 인격 의학을 하고자 하는 의사들은 그들이 성경적 계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격 의학은 영적 의학이 아니라 육체적, 심리적, 영적 차원을 가진 의학이다.”(‘폴 투르니에의 치유’ 중)

인간에게 자연적 삶이 따로 있고 초자연적(영적인) 삶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단 하나의 현실을 살아갈 뿐이다. 인간이 자연 세계와 영적 세계라는 두 세계에 동시에 속해 있다는 이중성은 여전히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신비이다.
 
성경, 인간을 만나다

그가 인격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섯 살에는 어머니를 여의면서 외삼촌 집에서 성장했다. 부모를 잃은 아픔이 그의 삶을 억눌렀다. 그러나 다행히 영적인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는 세 차례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외롭고 불안정했던 청소년 시절, 고등학교 교사인 줄 디브아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폐 성향을 극복했다. 1932년 ‘옥스퍼드 그룹 운동’에 참여하면서 신앙 안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나누는 대화법을 배우고, 매일 한 시간 이상 묵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또 그를 따뜻한 마음의 의사로 변화시킨 아내와의 인격적 대화를 통해서였다. 그는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자랑하는 차가운 이성적 의사에서 따뜻한 마음을 갖고 환자와 대화하는 인격 의학자로 변화됐다. 그는 사람들의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그의 삶과 인격의 근본 요소가 됐다.

“내 운명을 바꾸고 고아라는 불리한 조건에서 해방시켜 준 것은 나를 입양한 가정과 그리스어 선생님, 그리고 내 아내와 다른 많은 사람, 무엇보다도 옥스퍼드 그룹 친구들의 진정하고 인격적인 사랑이었다. 이 모든 것에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그분은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 많은 사람을 쓰시어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푸셨다.”(‘고통보다 깊은’ 중)

더 나아가 그는 1947년 전인격적 치유에 관심이 있는 의사와 신학자들의 모임 ‘보세이 그룹’을 조직해 주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의학과 신학 심리학이 통합된 그의 접근을 인격 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평소 의사와 상담자들에게 일관되게 “병을 치료하지 말고 인격을 치료하라”고 당부했다. “지금 이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의술의 개발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고 기도하는 의사들이다. 이들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현대의 모든 의학적 자료들과 지식을 사용할 때 우리는 예측하지 못했던 커다란 도움을 의학으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이다.”(‘폴 투르니에의 치유’ 중)
 
고통의 재발견

‘고난과 성장’ 사이엔 묘한 변수가 있다. 고난 그 자체는 절대 이롭지 않다. 늘 싸워야 하는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시련 앞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투르니에는 사람이 역경 후 성숙하고 창조적으로 변했다면, 그것은 고난 때문이 아니라 시련 앞에서 적극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통은 그 자체로는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며, 늘 싸워야 하는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시련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격적 존재의 문제 곧 인생과 그 변화에 대한 개인적 태도의 문제다…. 궁극적, 적극적, 창조적으로 반응하여 인격을 성장시킬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반응하여 발전을 저해할 것인가…. 어떤 반응은 역사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고, 어떤 반응은 실패한 삶으로 끝날 것이다. ”(‘고통보다 깊은’ 중)

그는 저서 ‘고통보다 깊은’에서 고통과 실패와 상실의 의미를 성서 심리학적으로 탐색했다. 그는 책에서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지만 고통 없이는 사람이 성장할 수 없다. 모든 상실과 고통은 창조성을 캐내기 위한 특별한 기회라고 말했다.

한때 그는 목회할 것인가 의사로 봉사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결국 평신도 의사로서 주님을 섬기기로 했다. 인격적 대화와 상담을 위해 소수의 환자만 진료하고 많은 시간을 저술 활동에 투자했다. 내과 의사와 상담자로서 그의 생애와 사역은 인격 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20권 넘는 저서를 통해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번역된 책들로 ‘고통보다 깊은’ ‘폴 투르니에의 치유’ ‘폴 투르니에의 선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인생의 사계절’ ‘모험으로 사는 인생’ ‘여성, 그대의 사명은’ ‘강자와 약자’, ‘죄책감과 은혜’ ‘비밀’, ‘고독’ 등 다수가 있다. ‘폴 투르니에의 기독교 심리학’을 집필한 게리 콜린스는 “투르니에의 가장 큰 공헌은 심리학과 기독교의 통합, 인격적 관계의 중요성 상기, 삶을 위한 실제적 지침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생애를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분을 통해 인생의 풍성한 행복을 누리길 바랐다. 결국 우리가 전 인생을 통해 발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인생의 사계절’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 그리고 그분의 구원을 아는 것, 이것이 인생의 의미라고 말한다.

“우리 인생은 부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순종하며 배움으로써 하나님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장년이 되어 왕성히 활동하는 중에 하나님을 알게 되기도 하고 은퇴한 뒤 노년의 묵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든 모두가 가능한 일입니다. 인생은 우리 앞에 놓인 선물입니다.”(‘인생의 사계절’ 중)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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