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두상달 (23) 중동선교 37년… 잠자던 기독교인에 복음의 꽃 활짝

중동선교회가 2015년 연세대 언더우드선교상 단체부문을 수상한 뒤 두상달 이사장과 관계자들이 연세대 루스채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로님은 왜 ‘3D업종’만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일이 있다. 청소년 사역과 중동선교, 교도소 사역 등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봉사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이슬람권 선교에 도전한 지 37년 됐다. 중동선교는 달걀로 바위 치는 격으로 힘들다. 그러나 누군가는 두드려야만 하는 절대적 사명이다. 나뿐 아니라 중동선교에 투신하겠다던 소수의 무리가 있었다.

1970년대 20만명이 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열사의 땅에서 일했다. 그들 중 기독교인들이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신앙생활을 했다. 이들이 귀국해 1984년 8월 마포 극동방송국에서 ‘중동선교회’를 창립했다.

원래 회장을 하기로 예정된 분이 계셨는데 갑자기 현장에서 내가 회장이 됐다. 극구 사양했지만 구레네 시몬처럼 무거운 짐을 지기로 했다. 1년만 봉사하려 했지만 뜻하지 않게 ‘장기집권’을 했다.

목수는 집을 지으면 집을 떠나는 것이다. 계속 책임 있는 역할을 해 달라는 요청을 가까스로 설득하고 회장이 된 지 25년이 되던 해 조남홍 목사를 이사장으로 세운 뒤 물러났다. 지금은 명예이사장이다.

선교회는 100여명의 선교사를 중동으로 파송했다. 중동 선교사는 아무나 할 수 없다. 핍박과 추방, 심지어 죽음이 늘 도사리고 있다. 아랍어도 보통 어려운 언어가 아니다.

중동선교에 관여하면서 사담 후세인 정부의 초청을 받아 이라크를 두번이나 방문했었다. 95년과 2000년의 일이었다. 희한하게도 이라크가 크리스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경제 봉쇄로 피폐해진 나라의 참상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이유에서였다.

바빌론과 갈대아우르, 니느웨성 등 수많은 기독교 유적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유적지만 해도 엄청난 자원이다. 거기에 석유나 가스 자원도 세계 2~3위다. 광활한 평야도 있다. 그런데도 잘못된 지도자 때문에 국가적 재앙에 빠진 게 이라크였다.

이라크 종교성 차관인 사미라와는 친구가 됐다. 그를 한국에 초청해 국회·국가조찬기도회에 함께 참여했다. 그의 집안은 도마가 살던 때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명목상 신앙인이었다. 기도도 할 줄 몰랐다. 그와 함께 오산리기도원과 명성교회 새벽기도에도 갔다. 그런데 두 번째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그가 우리를 보자마자 “주여 주여”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기도하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중동선교가 어렵지만 이처럼 잠자던 기독교인을 깨우는 열매도 맺을 수 있다. 2002년에는 김상복 김명혁 목사님 등 여러분의 도움으로 이라크에 신학교도 개교했지만 정세 불안으로 운영이 중단됐다.

중동선교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다고 우리의 기도까지 막을 수는 없다. 인터넷의 발달로 개방의 물결을 막을 수도 없다. 오랜 기도 덕분인지 지역에 따라 선교의 문이 열리는 곳이 생기고 있다. 하나님의 계절을 어찌 막겠는가.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수 없다.

중동에 복음의 장미꽃이 활짝 피고 생수의 강이 흐를 날을 믿음으로 바라본다. 무슬림은 적이 아니다. 인생의 안내자를 잘못 만난, 구원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들이다. “주님. 중동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해 주옵소서”.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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