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 키우자” 학교를 입양하다

정명호 혜성교회 목사가 1일 서울 종로구 ‘언더우드 기념관’ 앞에서 건물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혜성교회는 경신중고등학교 대지에 언더우드 기념관을 짓고 학교와 공유한다. 강민석 선임기자


언더우드 기념관 조감도.


서울 종로구 경신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최근 큰 선물을 받았다. 새 강당과 체육관이 생긴 것이다. 학교에 강당과 체육관을 선물한 이는 인근 혜성교회(정명호 목사) 성도들이다. 교회는 학교 대지에 지하 4층, 지상 3층의 ‘언더우드 기념관’을 지어 기증하고 학교와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 언더우드 기념관은 다음세대 교육의 장은 물론 지역사회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사용될 전망이다.

교회와 학교의 인연은 학교가 현 위치에 자리 잡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회는 당시 담임목사가 교목 사역을 할 정도로 학교와 친밀하게 지냈다. 2005년 정명호(51) 목사가 부임한 후에도 교회는 절기마다 학생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학교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후 교회가 부흥해 새 예배당이 필요한 시점에 정 목사는 학교 역시 강당이 없어 학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을 떠올렸다.

정 목사는 1일 “교회는 1948년 설립해 68년 그 자리에 교회당을 건축하고 리모델링을 한 차례 했을 뿐, 같은 위치에서 73년째 이어오고 있다. 교회가 있는 지역은 사적 제10호인 서울성곽의 영향으로 개발이 제한돼 있고 재건축도 불가한 곳”이라며 “이왕 예배당을 짓는다면 다음세대를 살린다는 취지에서 학교에 건물을 지어주고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기독교 가치관을 가진 인재를 키우는 데 앞장서 왔던 정 목사의 목회 철학과도 맞아떨어지는 방안이었다. 교회는 그동안 한아름유치원, 대안학교인 이야기학교, 청소년 공부방 러빙스쿨 등을 운영하며 다음세대를 양육해 왔다.

정 목사는 성도들의 의견을 먼저 구했다. 건축을 위한 작정 헌금을 해서 공사비 175억 중 100억이 모이면 건축을 진행하기로 했다. 성도들은 2016년 첫 월급, 만기 적금, 코로나19로 취소된 여행비 등을 모아 100억원 작정 금액을 달성했다.

교회의 제안을 받은 학교 측은 대찬성이었다. 경신학교는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한 언더우드 학당으로 시작해 올해 개교 136년을 맞은 기독교 학교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규식 부주석,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소설가 김동리 등을 배출했다. 그러나 학교에 강당이 없어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학부모도 초청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교회는 2017년 학교와 건축 협약서를 체결하고 2019년 2월 공사를 시작했다. 도중에 어려움도 많았다. 공사비가 245억원까지 불어나 작정 헌금을 한 번 더 해야 했다. 헌금이 다시 모이자 학교에 기부하지 말고 교회 소유 건물을 짓자는 성도들도 생겼다. 다른 지역 학교에서 재단을 싸게 인수하라는 제안도 들어왔다. 그래도 정 목사는 흔들리지 않았다.

“왜 비싼 건물을 지어 남 주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학교가 이 지역에서 ‘복음의 센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건축이었습니다. 따라서 지역 주민들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요. 성도들에게 우리가 학교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학교를 입양하는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완공을 앞둔 언더우드 기념관은 1200석 규모의 강당과 시청각실, 체육관이 들어선다. 평일엔 언제든지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다. 이효종 경신학원 이사장은 학생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강당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사장은 “교실 3개를 터서 임시 강당으로 사용하는 학생들을 보며 강당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왔다”면서 “혜성교회를 통해 기도 응답이 이루어져 감사하고 감격스럽다. 학생들을 바른 인재로 키우는 일에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더우드 기념관 완공에는 교단 간 연합이라는 의미도 숨어 있다. 혜성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총회장 배광식 목사) 총회 소속이고, 경신중고등학교는 예장통합(총회장 류영모 목사) 소속이다. 이 이사장은 “서로 다른 교단이 교류한다는 것은 한국교회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언더우드 기념관이 교단 협력의 좋은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달 중 언더우드 기념관에서 첫 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정 목사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복음을, 교사에게는 기독교 학교의 자부심을 심는 장소가 되길 꿈꾸고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동역해준 성도들께 감사드립니다. 학교와 함께 지역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데 힘쓰겠습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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