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4월이면 한 번쯤 듣는 말이다. 이 말은 20세기 영미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T S 엘리엇(1888~1965·아래 사진)의 장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비롯됐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길러 내고/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봄비로 둔한 뿌리들을 일깨운다/겨울은 우리를 따듯이 지켜주었다/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휘덮어/마른 덩이줄기로 어린 생명을 키웠다….”(‘황무지’ 중)
얼었던 땅이 녹고 라일락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날도 시인에겐 전쟁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을 떠올리며 ‘살아내야 하는 잔인한 계절’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황무지’란 현대 문명의 황폐함과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이후 황폐해진 삶의 터전과 정신적인 공허감을 상징한다. 또 어떤 믿음도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는 비극적 상태를 나타낸다. ‘황무지’는 1922년 출간 즉시 새로운 시의 보통 명사가 됐고 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인식됐다. 엘리엇은 ‘황무지의 시인’으로 불릴 정도로 그의 대표작이 됐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양한 시와 희곡, 평론 등을 쓴 대문호인 그를 ‘황무지’의 작가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허무주의가 넘치는 ‘황무지’만 아는 독자들은 그의 문학이 기독교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가 황무지를 발표한 것은 1922년이었고, 그가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하는 유니테리언 교파에서 영국 성공회로 개종한 것은 1927년이었다. 그 사이의 시간은 그에게 참회와 회복 그리고 은혜의 시간이었다.
그는 영국 국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 그린리프 엘리엇은 유니테리언 교파의 목사로 워싱턴대학교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어머니 영향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1906년 하버드대학에 입학, 3년 만에 문학사 학위를 받은 후 철학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1915년 비비언 헤이우드와 결혼했고 이듬해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런던대학 강의를 맡으면서 영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혼생활의 실패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아내의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주었다.
황무지 이후 출간한 ‘휑한 자들’(1925)은 개종하기 전, 그가 개인의 구원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증언하며, 당시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우리는 휑한 자들/우리는 볏짚 인간… 꿈속에서 감히 내가 보지 못할 눈들은/죽음의 희망 왕국에선/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당신 것이니/세상은 이렇게 끝나네/세상은 이렇게 끝나네/세상은 이렇게 끝나네/쾅 하고가 아니라 울먹이며”(‘휑한 자들’ 중)
그는 ‘휑한 자들’을 쓰던 1920년대 중반 극도의 우울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으나 신앙에서 ‘출구’와 ‘처방’을 찾는다. 종국에 그는 신앙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문학을 완성했다. 시련의 시간을 통해 그의 삶과 문학은 기독교적으로 변해갔다.
엘리엇은 ‘황무지’와 ‘휑한 자들’의 세계를 넘어서기 위해 조부가 배격했던 ‘삼위일체 신앙’을 받아들인다. 그는 1927년 39세 때 자신이 영국 국교로 개종한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후에는 공개적으로 정통파 기독교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문학에 있어 고전주의자, 정치에 있어서 왕당파, 종교에 있어 앵글로 가톨릭(성공회 내 고(高)교회파 입장)”이라는 일종의 성명을 발표했다.
개종 후 처음 발표한 시 ‘성회수요일(Ash Wednesday)(1930)’은 단테의 ‘신곡’ 중 연옥에 깊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그는 1619년 ‘성회수요일’ 예배에서 ‘돌아옴(turn)’을 주제로 국왕을 포함해 회중들의 진정한 참회를 촉구했던 영국의 성직자 랜슬럿 앤드루스에게 경의를 표하며, ‘성회수요일’이란 제목을 붙였다. 그는 개종 과정에서 앤드루스의 책을 깊이 탐독했다. 그의 시 ‘성회수요일’도 ‘돌아옴’이 핵심이다.
“다시는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기에/희망하지 않기에/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기에/이 사람의 재주와 저 사람의 기회를 탐내는 일/더 이상 이런 것들을 얻으려 애쓰지 않기에(늙은 독수리가 왜 날개를 펴야 한단 말인가?)/여느 통치의 권력이 희미해진다고/슬퍼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성회수요일’ 중)
그는 ‘성회수요일’에서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치유와 구원을 바라는 고백을 한다. “…스러지며, 스러지며, 희망과 절망 넘어서는 힘/세 번째 계단 힘겹게 오르며/주여, 나 감당치 못하오니/주여, 나 감당치 못하오니/한 말씀만 하소서”(‘성회수요일’ 중)
무엇보다 기독교 시인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후기의 역작인 ‘네 개의 사중주’(1943)다. ‘네 개의 사중주’는 엘리엇이 쓴 가장 긴 시이고 또한 시로서는 마지막 작품이다. 그의 문학 세계의 정점이자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작시를 ‘사중주’라고 부른 취지는 거창한 ‘교향곡’에 대비되는 사색적 실내악곡이며, 서너 개의 다른 목소리들이 각기 현악 사중주의 악기들처럼 분배돼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네 개의 사중주’ 중 ‘리틀기딩’(Little Gidding)은 17세기 영국에서 종교분쟁이 극심하던 시기에 신앙인들이 모여 기도 생활에 전념하던 시골 마을 리틀기딩을 제목으로 삼고 있다. 네 편 중에 최고의 작품으로 알려진 리틀기딩은 마을 이름을 떠나 마음을 다해 기도할 장소로 상징된다. 성공회 전통에서는 리틀기딩은 기독교적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공동체의 상징이다.
‘리틀기딩’은 순간과 영원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엘리엇이 회의와 갈등 속에 걸어온 외롭고 긴 참회와 구원의 여정은 천국이 목적지였음을 보여준다. 천국은 시간과 무시간이 교차하는 곳이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세상의 모든 갈등과 모순의 대립이 해결되는 곳,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 그리고 인간의 사랑과 신의 사랑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고 노래한다.
“우리가 시작이라 하는 바는 흔히 끝이며/또 끝을 맺는 것은 시작하는 것이다/끝이란 우리가 시작한 그곳… 우리는 죽는 자와 함께 죽으니/보라, 그들 떠나지 않나, 우린 그들과 함께하고/우린 죽은 자와 함께 태어나니/보라, 그들 돌아오지 않나, 우리 함께 데리고… 이 사랑이 이끄시고 이 소명이 부르시니/우린 탐험을 멈추지 않으리/또 우리 모든 탐험 끝에/우리 시작한 곳 도달하여/그곳을 처음으로 알게 되리”(‘리틀기딩’ 중)
엘리엇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발표한 ‘네 개의 사중주’로 당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국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1948년 메리트 훈장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했던 엘리엇은 개종 이후 영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썼다. ‘사랑이 이끄시고 소명이 부르시니 우린 탐험을 멈추지 않으리’라고 노래한 그는 기독교 문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