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창조, 타락 그리고 구원 영원 향한 시간이 흐른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나

윌리엄 블레이크의 ‘태초의 창조주 하나님’ ‘아담과 하와의 심판’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리스도’(오른쪽 위부터).












‘신비의 시인’으로 불리는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아래 사진)는 뛰어난 상상력과 시대를 앞선 통찰력으로 기독교적 인식을 확장한 초기 낭만주의 시인이다. 그의 이름이 낯설다면 존 밀턴의 ‘실낙원’이나 단테의 ‘신곡’을 떠올려보자. 그 작품에 삽입된 독특하고 강렬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바로 윌리엄 블레이크이다. 미국의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마다 그의 시를 읽었다고 한다.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화가였다. 14세 때 판화가 제임스 베서의 도제로 들어가 7년간의 견습 과정을 거쳐 전문 판화가가 됐다. 22세에 왕립 미술원에 입학해 자신만의 독특하고 환상적인 양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섬세하고 우아한 선과 장식, 특유의 환상적인 그림은 보는 이의 상상과 영감을 꿈틀거리게 했다. 그는 삽화를 회화와 나란히 견줄 정도로 중요하게 인식시켰다.

그에게 그림과 시는 하나였다. 런던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낸 그는 시집 ‘순수의 노래’(1789) ‘천국과 지옥의 결혼’(1790) ‘경험의 노래’(1794)를 필두로 삽화를 넣은 서정시와 서사시를 남겼다. 기독교 성경 내용에 신비한 사색을 곁들인 ‘욥기’(1825)가 유명하다. 그의 시는 상징적 비유적 계시적인 표현이 많아 낭만주의 시 중에서도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정신적·영적으로는 불모의 상태였다. 블레이크는 잃어버린 인류애를 회복시키기 위해 예술 활동을 했다. 어쩌면 구약시대 선지자들처럼 작품을 통해 위선적인 종교, 강압적인 도덕률, 노예제도, 어린이 학대 등을 질타하고 인간성 상실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모든 사람이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초기 시부터 후기 예언 시에서까지 강조했다.

블레이크는 교회의 부패를 비판했으나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타락한 인간성의 회복과 평등을 희망하며 시 속에서 구원을 모색했다.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식을 확장해 열린 세계관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이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성한 인간성을 회복해야 하며, 기도를 통해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기를 희망했다.

그의 대표적인 두 시집 ‘순수의 노래’와 ‘경험의 노래’에는 제목이 똑같거나 유사한 내용의 작품들이 마치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듯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블레이크 자신의 표현대로 서로 “변증법적 대립 또는 상반”을 이룬다. ‘순수’와 ‘경험’ 이 두 세계는 순수한 자연과 타락한 문명 세계, 기독교 신화를 적용하면 인간의 타락 이전 세계와 그 후 세계의 대립과 차이를 나타낸다.

그가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짓는 데 시종일관 강조한 것은 이성의 억압적인 성격에 맞서는 상상력 혹은 창조적인 힘이었다. 그의 시 ‘슬픔의 전조’를 보면 그는 세상을 순수와 경험의 두 상태로 나누고 상호 보완하여 조화를 이루는 세계로 봤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너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한순간에 영원을 담아라”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는 인식의 확장으로 영원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진다.

그는 시 ‘거룩한 모습’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자비 연민 평화 사랑으로 표현했다. “자비 연민 평화 사랑에게/모든 사람이 고통 속에서 기도한다/그리고 이 기쁨의 덕행들에게/모두 감사한다/자비 연민 평화 사랑은/우리들의 다정한 아버지 하나님.”(‘거룩한 모습’ 중) 이 시에서 또 다른 구원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평등한 존재이므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모두 사람의 모습을 사랑해야 한다네/이교도 터키인 유대인 속에 있는 그 모습을/자비 사랑 연민이 사는 곳/그곳에 하나님도 사시네”(‘거룩한 모습’ 중) 사랑과 자비와 연민이 있는 곳이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이다. 온 인류가 서로 사랑해야 함은 그곳에 하나님이 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의 신앙은 성경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골 3:11)

블레이크는 시 ‘양’에서 어린양의 속성을 통해 하나님의 성격을 묘사했다. 양은 신의 사랑에 의해 축복받은 창조물로서 사랑의 증표이다. “어린양이여, 누가 너를 만들었는지/누가 너를 만들었는지 너는 아는가/너에게 생명을 주고, 시냇물 가에서/그리고 초원에서 너를 먹여주었는지/너에게 즐거움의 옷, 북슬북슬하고/빛나며 가장 부드러운 옷을 주었는지/누가 너에게 그처럼 고운 목소리를 주어/모든 골짜기로 기뻐하게 하였는지/어린양이여, 누가 너를 만들었는지/누가 너를 만들었는지 너는 아는가”(‘양’ 중) 어린양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 기쁨의 의복과 생명,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준 이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짐으로써 창조주의 사랑과 신의 은총을 보여준다.

그의 시 ‘밤’은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뛰어노는 천국을 표현한 창조주의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사 65:25) “사자의 붉은 눈이 어느새 금빛 눈물을 흘리고, 여린 울음소리들이 가여워 우리를 돌며 이렇게 말하는 세상: ‘그분의 온순함이 분노를, 그분의 건강함이 병을, 우리의 영원한 세상에서 몰아내 버리셨단다. 그래서 이젠, 음매 우는 양아, 나도 네 곁에 누워 잘 수 있단다. 네 이름을 가진 그분을 생각하며 너처럼 풀을 뜯고 울 수도 있단다. 생명의 강물에 씻겼으니 나의 밝은 갈기도, 내가 우리를 지키는 한, 영원히 황금처럼 빛날 거야.’”(‘밤’ 중)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과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절제와 질서가 미덕이었던 이성의 시대에 상식을 뛰어넘는 기법, 신비주의적 감각은 당시 이해받지 못했지만 20세기 비평가들에 의해 재평가되면서 초기 낭만주의의 주요 시인이자 화가로 인정받았다. 그는 당대의 역사 사회 문화예술 정치 등의 제반 문제들에 자신의 예언적 전망을 덧씌우고 그것을 ‘창조-타락-구원’으로 이어지는 기독교적 역사에 합치시킨 선지자 같은 시인이었다.

시대가 달라져도 그의 시는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18세기의 블레이크는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넬 듯하다. “당신이 한숨 쉬는데, 당신을 만든 분이 곁에 없으리라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눈물을 흘리는데, 당신을 만든 분이 가까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 그분이 우리에게 자신의 기쁨을 주시어 우리의 슬픔을 파괴하시나니. 우리의 슬픔이 달아나 사라질 때까지 그분이 우리 곁에 앉아 슬퍼하시나니.”(‘타인의 슬픔에 대하여’ 중)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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