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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나를 기다리고 있던 오늘의 ‘꽃물’은…

성서와 묵상과 걷기와 시, 한희철 정릉감리교회 목사의 글감이다. 한 목사가 지난 28일 서울 성북구 교회 담임목사실에서 저술한 책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여기에 물이 있다’
 
‘고운 눈 내려 고운 땅 되다’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


“목회자에게 글쓰기는 중요합니다. 설교는 말씀을 언어로 풀어내는 행위이기에, 설교자는 결국 언어와 씨름해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습니다. 듣는 이, 읽는 이에게 가닿는 언어, 공감과 공명을 일으키는 언어를 평생 고민해야 합니다.”

한희철(63) 정릉감리교회 목사는 글쟁이다.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하고 1987년 강원도의 작은 마을 단강에서 목회를 시작하며 친필로 주보에 시골교회 이야기를 담을 때부터 그랬다. 목회자로서 그가 섬기는 마을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그에게 경청의 덕목을 배우게 했다. 단강감리교회에서 15년을 섬긴 이후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에서 6년, 부천 성지감리교회에서 11년을 사역하고 2018년 지금의 서울 정릉감리교회에 부임했다. 그 사이 ‘하루 한 생각’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 ‘작은 교회 이야기’ ‘네가 치는 거미줄은’ 등 저서는 10여권으로 늘어났다. 매주 한 차례 글을 선보인 국민일보 겨자씨 필진으로 3년, 생활정보지 ‘교차로’의 칼럼니스트로는 무려 25년의 집필을 이어왔다.

‘여기에 물이 있다’(꽃자리)를 펴낸 한 목사를 지난 28일 서울 성북구 교회 담임목사실에서 만났다. 이번 책은 절반이 여백이다. ‘성서일과와 묵상노트’란 부제가 붙어 있다. 성서일과는 교회력에 따라 3년 주기로 성경 전체를 통독하기 위해 정해진 그날의 말씀이다. 시편 예언서 역사서 복음서 서신서 등을 하루에 각기 나눠 읽는다. 한 목사는 코로나19 초기부터 정릉감리교회 성도들과 성서일과에 따른 말씀 묵상을 시작했다. 내가 선택해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다리고 있던 말씀을 때가 되어 만나는 게 큰 장점이다.

1일에 해당하는 성서일과 말씀은 시편 66편 1~9절, 시편 30편, 예레미야 51장 47~58절, 열왕기하 4장 18~31절, 고린도후서 8장 1~7절이다. 독자들은 이 가운데 자신에게 더 인상적인 말씀을 새기는 작업을 한다. 한 목사는 이를 ‘꽃물’이라고 불렀다. 꽃물은 고기를 삶아내고 아직 맹물을 타지 않은 진국을 일컫는다. 이어 한 목사의 짧은 말씀 묵상이 한 단락 이어지고, 질문과 한 줄 기도, 말씀의 실천 등이 지속된다. 이날의 중보기도 제목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땅, 투병 중인 교우들과 지인들, 물질적 빈곤으로 곤란함을 겪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우소서”이다. 마지막으로 한 목사의 짧은 시(詩), 마치 일본 특유의 단시(短詩) 하이쿠처럼 두 줄로 정리된 글이 덧붙여진다. “묻힌 선은 거름이고/ 묻힌 악은 악취다. -거름과 악취”

한 목사는 우선 7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성서일과에 따른 묵상노트를 이번 책으로 발간했는데, 날짜는 책에 명기하지 않았다. 그는 “한번 날짜를 놓치면 따라가기 어려우므로 고민 끝에 독자가 스스로 묵상노트에 날짜를 적어 넣도록 빈칸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책이 1권이고 출판사는 이를 12권 시리즈로 발간할 계획이다.

한 목사는 다른 책에서도 시에 관해 무한 애정을 보여준다. 2020년 ‘고운 눈 내려 고운 땅 되다’(겨자나무)는 월간 기독교사상에 ‘내가 친 밑줄’이란 코너로 연재한 ‘시에서 길어 올린 풍경’이다.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입’에 수록된 ‘우리 동네 목사님’을 읽고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를 기억한다. 정현종 시인의 ‘어떤 성서’를 통해서는 걸음을 멈추고 경이와 설렘으로 엎드려 들여다보는 노력을 떠올린다.

2018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된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꽃자리)는 강원도 고성 명파초등학교에서 경기도 파주 임진각까지 열하루 동안 도보여행을 한 경험을 풀어놓은 글이다. 성서와 묵상과 걷기와 시, 한 목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보물들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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