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에 갇힌 새는 두려움에 떨리는 소리로 노래를 하네/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열망하는 것들에 대해/ 그 노랫가락은 먼 언덕 위에서도 들을 수 있다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유를 노래하니까….”(마야 안젤루의 시 ‘새장에 갇힌 새는 두려움에 떨리는 소리로 노래를 하네’ 중)
미국의 작가 마야 안젤루(1928~2014·사진)는 토니 모리슨,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으로 꼽힌다. 그의 삶의 밀도는 촘촘하고, 모양은 굴곡지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대에 그는 한계에 도전해 소설가, 시인, 가수, 배우, 영화감독, 교수, 인권 운동가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희망을 증언했다. 그는 자서전 7권을 비롯해 수필 시집 희곡 시나리오 등을 저술했다. 특히 ‘자전적 소설’로 분류되는 독특한 형식의 7권 자서전을 차례로 발표해 ‘자서전적 소설’이란 장르를 구축했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1969), ‘내 이름으로 함께 모여라(1974), ‘크리스마스처럼 노래하고 스윙 댄스를 추고 즐거워하고’(1976), ‘한 여인의 마음’(1997), ‘하나님의 아이들에게는 모두 여행 구두가 필요하다’(1986), ‘하늘 높이 날려버린 노래’(2002), ‘엄마, 나 그리고 엄마’(2013) 등은 고단한 삶의 궤적 속에 발견한 가족 사랑, 자아 성장, 모성애를 주제로 썼으며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한 인권운동 등 미국 현대사 이야기도 들어있다.
그는 한 권도 아닌 7권의 자서전을 쓴 이유에 대해서 마지막 자서전 ‘엄마, 나 그리고 엄마’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가 자서전을 쓴 이유는 사랑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치유하는지,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에서 상상 불가능한 높이까지 오를 수 있도록 돕는지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껍질이 벗겨지는 아픔이 없이는 열매가 열릴 수 없듯이 유년기와 사춘기의 아픔과 절망을 겪지 않고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없다는 사실들을 자서전을 통해 말했다. “성장한다는 것은 천사와 씨름을 한 그 예언자처럼 씨름을 해야 하는 거지요. 자신을 축복해주기 전까지는 보내지 않겠다고 천사와 씨름하던 구약성서의 야곱처럼 말이죠. 젊은이들은 가끔 이런 싸움에서 지친 나머지 불면증 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용기야말로 모든 덕 중에 가장 중요합니다. 용기가 없으면 나머지 다른 덕을 일관성 있게 옮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저작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7세까지의 삶을 회고한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이며, 이 책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안젤루는 이 책에서 “흑인 여자들은 젊은 시절이면 누구나 겪는 그 모든 자연의 힘에게 공격받는 동시에 남성의 편견과 백인의 불합리한 증오, 흑인의 무력함이라는 삼중으로 된 집중 포격을 받는다”고 밝혔다. 안젤루가 태어나서 자란 당시 미국은 날개를 가진 새들의 자유로운 비상을 거부하는 ‘새장’이었다. 작가가 자신의 성장 내면을 그리기 위해서는 흑인들의 삶을 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안젤루가 그려내는 자기 형성의 흔적은 당시 미국 남부 흑인들의 삶의 풍경인 동시에, 그의 해맑은 정신과 너그러운 인간성이 녹아있다. 그가 말한 갇힌 새의 노래는 기쁨의 축가가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보내는 기도였다.
안젤루가 유년 시절을 보낸 1930년대는 미국에서 인종분리정책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의 작품은 성차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비롯한 가족 문제를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그가 시련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 든든한 울타리였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부터 온갖 불행을 겪으며 자란 흑인 여성 마야 안젤루가 어떻게 세계인의 멘토이자 희망의 상징인 ‘마야 안젤루’가 됐을까. 그의 말대로 사랑이 고통을 치유해 주었고, 이를 통해 성장했기에 가능했다.
그는 3세 때 부모가 이혼한 뒤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고 아이들이 부르는 성령 충만한 복음성가 소리를 좋아했다. 할머니의 아침기도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새로운 날을 맞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젯밤 누웠던 침대가 죽은 몸을 누이는 판자가 되지 않고, 덮었던 담요가 수의가 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곧고 옳은 길을 걷도록 제 발을 인도하시고 제 혀에 고삐를 채우도록 도와주소서….”
비교적 여유 있는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끔찍한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7세 때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범인은 잡혔고 재판을 받았으나, 형을 살기 전에 안젤루의 삼촌들에게 살해당한다. 이 사건은 어린 안젤루에게, 자신이 말을 했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두려움을 불어넣었다. 거대한 폭력에 어린 안젤루는 한동안 실어증을 앓았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말씀의 빛으로 찾아오셨다. 16세에 미혼모가 되고 인생이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 무렵, 우연히 ‘진리의 교훈(Lessons in Truth)’이란 책을 읽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라는 문장을 일곱 번째 읽을 때, 어쩌면 이게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하나님이 나를 진실로 사랑하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나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저 높은 산 위를 나르고 깊은 골짜기를 비행하는 새와 같은 느낌이었다.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미혼모가 흑인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기란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엄마, 나 그리고 엄마’에서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멘토, 윌키 선생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선생님, 저는 오늘 자살 충동을 느꼈어요. 아들과 함께 창밖으로 뛰어내릴 생각을 했어요. 제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아요.” 윌키 선생은 안젤루에게 노트와 펜을 주며 “애야, 네가 그동안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 한번 적어보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렇게 시작해보렴. ‘나는 들을 수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다음에는 ‘이 공책을 볼 수 있다’라고 써라. 그리고 폭포도, 꽃이 피는 것도, 연인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며 ‘나는 볼 수 있다’라고 적으렴”이라고 말했다.
또 윌키 선생은 말했다. “이제 이렇게 적어봐. ‘나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다음엔 오늘의 뉴스도, 고향에서 온 편지도, 번잡한 길거리에 달린 정지신호도 읽지 못하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나는 글을 읽을 수 있다’라고 적어라.”
윌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노트 첫 장의 마지막 줄에 다다랐을 때쯤 광기의 원인이 달아났다. 안젤루는 다시 펜을 들고 적기 시작했다. ‘나는 들을 수 있다. 나는 말할 수 있다. 나에게는 아들이 있다. 나에게는 어머니가 있다. 나에게는 오빠가 있다. 나는 춤을 출 수 있다.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나는 요리를 할 수 있다. 나는 글을 읽을 수 있다. 나는 글을 쓸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 사실을 진실로 믿고 자신의 정체성과 인식을 바꾸었던 그는 어떠한 차별과 억압에도 짓눌리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다. “당신은 매정하고도 왜곡된 거짓말로/ 나에 대한 역사를 기록할지 모릅니다./ 당신은 나를 먼지 구덩이에 짓밟을지도 모릅니다./하지만 그래도 나는/ 먼지처럼 일어날 겁니다. …당신은 말로 나를 사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눈빛으로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증오심으로 나를 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공기처럼 나는/ 일어날 것입니다.”(마야 안젤루의 시 ‘그래도 나는 일어난다’ 중)
그는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 때 ‘아침의 맥박에 대하여’라는 자작시를 낭송했다. 이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자작시를 읊은 로버트 프로스트에 이어 두 번째 일이다. 그 외에도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는데, 1971년에 발표한 첫 시집 ‘내가 죽기 전에 차가운 물 한 잔만 주오’로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정식 학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웨이크포리스트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받아 1981년부터 2011년까지 꾸준히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0년 국가예술훈장을, 2011년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고, 오십여개 넘는 명예학위를 받았다.
마야 안젤루는 2014년 5월 세상을 떠났지만 지난1월 미국 재무부가 그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주화 25센트에 얼굴을 새겼다. 흑인 여성으로 처음이었다. 동전에는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날아가는 새 앞에서 팔을 들고 있는 안젤루의 모습이 담겼다. 자유를 느끼며 새처럼 날아오른 그의 삶이 느껴진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