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햇빛 속에서 지금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의 얼굴엔 경악과 희열, 황홀한 빛이 서려 있었다. 그리스도였다. 늙은 사도 베드로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베드로의 귀에는 맑지만 아주 슬픈 주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가 나의 어린 양들을 저버렸으니 내가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로마로 간다.” 꼼짝 않고 땅에 엎드려 있던 사도는 몸을 일으켜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오던 길을 되돌아 다시 로마로 향했다.”(‘쿠오바디스’ 중)
폴란드의 민족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1846~1916·사진)의 장편소설 ‘쿠오바디스’에서 기독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극심해지자 신도들의 간청으로 로마를 탈출하려던 사도 베드로가 새벽 여명 속에 십자가를 메고 걸어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환상 속에서 보고 “쿠오바디스 도미네?”라고 묻는 장면이다.
‘쿠오바디스’는 1세기 중엽 로마의 그리스도교도 박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 정의와 사랑은 어떠한 장애에 부딪혀도 반드시 이기며, 사악한 권력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신념을 담은 작품이다. 고대의 이교도적인 세계관인 헬레니즘과 기독교적 신앙관인 헤브라이즘의 항쟁을 묘사한 대작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탈리아인도 아닌 폴란드인 시엔키에비츠가 왜 로마의 대화재와 기독교 박해를 다룬 소설을 썼을까.
당시 폴란드는 18세기 말에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에 의해 분할, 점령당해 주권을 잃었으며 그 상태가 1918년까지 계속됐다. 그동안 민중은 자유와 독립을 찾기 위해 각 처에서 몇 차례 봉기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세 나라의 탄압은 더 심해졌다. 이런 사정이 문학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폴란드 근대문학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가 민족 해방의 달성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권력과 권위에 의해 다스려지던 네로 황제 시대는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의 압제에 신음하던 폴란드의 시대상과 일치한다.
가톨릭 신자였던 작가는 그리스도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숭고한 모습을 통해 폴란드 민족에게 정의와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작품 속 로마의 기독교도들은 당시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압제를 받고 있던 폴란드인들의 고난을 은유했다. 무저항의 기독교가 권력을 자랑하는 로마를 이겨냈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외세의 지배로 고통받던 폴란드에 위안을 주고 행동의 지침을 전하고자 했다.
광기와 음란의 세월을 보내는 로마의 네로 황제, 복음을 전하는 사도 베드로와 바울, 신앙심이 깊은 리기아와 그녀를 사랑하는 로마인 비니키우스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비니키우스는 인질로 잡혀 온 기독교인 리기아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다. 그는 네로 황제의 충신이자 숙부인 페트로니우스에게 부탁해 리기아를 집으로 데려오려고 한다. 하지만 기독교도들이 그녀를 데려간다. 리기아를 찾으러 간 그는 리기아의 충복인 장사 우르수스에게 맞아 부상을 당하지만 그곳에서 기독교도들에게 간호를 받으며 머물다가 리기아와 사랑에 빠진다.
네로 황제의 방화로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해 한동안 헤어졌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약혼을 하고 비니키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 네로 황제 방화설이 수그러들지 않자, 당시 집권 세력은 기독교도들을 희생양으로 탄압하고 살해했다. 리기아는 로마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들소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를 맞지만 충직한 시종 우르수스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불안과 광기에 흔들리는 네로 황제가 놀란 것은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먹이가 되어 죽어가면서도 멈추지 않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평온한 찬송,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믿음이었다. 베드로와 바울은 순교하고 병사들의 반란으로 네로는 자살한다. 비니키우스와 리기아는 시칠리아의 한 섬에서 행복한 생활을 시작한다.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시엔키에비치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는 믿음에서 비롯되며, 악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복수가 아닌 용서라는 것을 전했다.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만약에 너희들의 형제가 너희에게 죄를 범하면 타일러라. 하지만 회개하면 용서하라. 가령 하루에 일곱 번 너희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용서를 빌며 돌아온다 해도 너희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그를 용서해 주어라.”(‘쿠오바디스’ 중)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사랑해야 하며 그 악을 선으로써 갚아야 합니다. 선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악한 사람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악한 사람들로부터 악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의 힘에 의해서입니다.”(‘쿠오바디스’ 중)
비니키우스는 이런 기독교 진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악을 선으로 갚고, 적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권고하는 교리는 군인 비니키우스에게는 미친 짓으로 보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기꾼 킬로’가 회심하자 그를 죽이지 않고 세례를 베풀며 말했다. 여태까지 그가 알던 모든 철학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사람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악을 미워하는 명령보다 더 고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아직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넓고 넓은 선으로, 자기가 받은 해악과 불행을 잊어버리고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랑으로 그리스도교도들이 킬로를 죽이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비누키우스는 신앙고백을 한다. “나는 그리스도가 부활한 것을 믿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종교가 덕과 정의와 자비를 낳고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 같은 죄악을 저지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러분과 리기아를 통해서 깨닫고 알게 된 것입니다. 나의 마음속에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는 내 노예를 인간 취급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쿠오바디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폴란드군에게 제2의 성서로 모든 병사가 배낭 속에 넣고 다녔다고 하는데, 이 책이 핍박받는 약소국가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지주가 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작가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란 질문은 불확실한 세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주여 제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주여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는 질문으로 들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896년 발표된 이 작품은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이 작품으로 작가는 190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의 제목은 라틴어 ‘Quo Vadis, Domine?’에서 인용한 것이다.
시엔키에비치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조금 떨어진 옥세이카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대학 시절부터 일간지에 칼럼과 서평 등을 기고하면서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다. 1872년 첫 장편소설 ‘공허’를 내놓아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등대지기’(1881) ‘대홍수’(1886년) ‘판 보워디요프스키’(1887) 등을 발표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했고 평소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학작품을 즐겨 읽던 그는 1892년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겪은 마지막 수난과 허구를 접목한 ‘주님의 뒤를 따르라’라는 단편을 발표한 후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역사소설을 집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로마 근교 아피아 가도에 있는 ‘쿠오바디스 성당’을 방문하고 네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구상부터 자료 수집, 집필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소요된 대작 ‘쿠오바디스’를 발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헨리크 시엔키에비치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스위스로 건너가 폴란드 독립을 위해 모금 운동을 벌이다 1916년 스위스의 브베에서 숨을 거두었다. 조국의 땅에 묻어달라는 그의 유언대로 그의 유해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해방된 조국 폴란드로 옮겨져 바르샤바의 성 요한 성당에 안장됐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