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성도들이 모이던 안디옥은 이제는 더 이상 모일 수 없는 곳이 됐다. 지진으로 폐허가 됐고 살아남은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붕괴된 건물 안에 매몰된 사람들만이 생사조차 확인되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다.
안디옥으로 알려진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는 지난 6일 카흐라만마라쉬 지역에서 발생한 강력한 지진을 피하지 못했다. 2000년 6월 광림교회가 현지 프랑스 영사관 건물을 매입해 봉헌한 안디옥개신교회도 다르지 않았다. 100여년 가까이 숱한 풍파를 견뎌온 이 교회 건물은 폭격을 맞은 듯 주저앉았다. 교회 입구 창에 새겨져 있던 ‘AGAPE(아가페·하나님의 사랑)’라는 글귀만이 폐허 속에서도 이곳이 교회였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교회뿐만 아니었다. 주변 상가와 집 식당 등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주일인 19일(현지시간) 정오가 되자 무너진 교회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리고 교회 앞 길 위는 예배의 장소가 됐다. 예닐곱명의 튀르키예와 시리아인 성도들은 무너진 교회를 바라보며 주일예배를 드렸다. 건물 잔해 더미에 눌려 무수히 쓰러져갔을 이들을 기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위로의 찬양도 불렀다. 이날 예배엔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대표회장 김태영 목사)과 부산에 본부를 둔 국제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재단·온병원그룹(정근 이사장) 일행도 함께했다. 2007년부터 교회를 맡아온 장성호(47) 목사는 ‘흩어지는 교회’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장 목사는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에서 모였는데, 지금은 지진으로 안디옥의 성도들이 다 흩어졌다”며 “2주가 지난 지금 매몰된 성도도 있다. 생존 여부를 알 수는 없으나 그들도 우리와 이 예배에 함께하고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2000년 전 이방 선교를 주도한 안디옥교회의 선교를 다시 새겨봐야 한다”며 “우리 모두 지진의 트라우마를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지만 남겨진 자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무거움을 간직하고 선교적 삶을 흩어진 땅 가운데서 살아내자. 각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자”고 덧붙였다.
함께 기도하며 위로해 준 일행들에게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교회 성도인 조지 고자마훌(58)씨는 “지난 수년간 매 주일 우린 이곳에서 예배드리며 예수님을, 그리고 서로를 향해 사랑한다는 말로 예배를 시작했다”며 “교회가 언제 복구될지는 모르겠지만, 예배를 이어나가려 한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가장 큰 힘이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계획이 있으시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 목사도 “예배당은 무너졌어도 예배는 무너지지 않았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이번 일을 통해서 예배를 회복하자”고 독려했다.
예배 후 한교봉, 그린닥터스재단·온병원그룹은 성도와 현지인을 위한 의료 활동에도 나섰다. 이들은 튀르키예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에서 긴급 의료 봉사 및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민일보도 구호활동에 동행했다.
하루 앞서 18일엔 남동부 하타이주 이스켄데룬에 마련된 지진 피해 이재민캠프를 찾아 임시 안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약국 등을 열고 의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 캠프는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본부(AFAD)가 버스터미널 인근 공터에 급히 꾸렸다. 현재 캠프에는 가족 단위 이재민 2500여명이 머물고 있다. 이재민들은 약 16㎡(약 4.8평) 크기로 자갈밭 위에 임시로 세워진 텐트 500여개에 나뉘어 기약 없는 광야의 삶을 살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아시예라즈(10·여)는 휴대전화 번역기를 통해 “나랑 같은 열 살 친구가 지진으로 벽에 깔려 죽었다. 여기에 들어온 첫날 저녁엔 밥 먹기 싫었다”고 말하고는 이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안타키아·이스켄데룬(튀르키예)=임보혁 특파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