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지휘자 대니얼 바렌보임(75)이 분신같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를 떠난 지 12년 만에 처음 시카고 심포니 센터 오케스트라 홀에서 지휘봉을 잡는다.
바렌보임은 다음달 1일부터 3일까지 시카고 심포니 센터에서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의 걸작 '나의 조국'(Má Vlast)으로 CSO 공연을 이끌 예정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대인 바렌보임은 1970년 객원 지휘자로 CSO와 첫 인연을 맺고, 1991년 게오르그 솔티(1969년~1991년 재임)의 뒤를 이어 CSO 음악감독 겸 상임 지휘자에 올라 2006년까지 15년간 재임했다.
23일 시카고 트리뷴은 바렌보임이 재임기간 악장 9명 포함 단원 40명을 새로 영입하는 등 CSO의 새로운 기틀 다지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며 "이처럼 깊은 인연을 고려할 때 12년 공백은 매우 긴 것"이라고 운을 뗀 후 그의 소회를 전했다.
"왜 그렇게 거리를 두고 지냈나?"라는 질문에 바렌보임은 "한번 끝났으면 끝난 거다. 다시 돌아올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바렌보임은 현재 독일의 명문 오케스트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 음악감독이다.
바렌보임은 "챕터가 넘어갔으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다"면서 그러나 CSO 음악감독 리카르도 무티(77)로부터 '와달라'는 요청을 듣는 순간, 흔쾌히 '가겠다'는 대답이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바렌보임은 이탈리아 태생의 지휘 거장 무티가 2006년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직에서 돌연 사퇴한 후 후임으로 공백을 메우는 등 인연을 갖고 있다.
바렌보임은 "CSO에서 처음 지휘한 1970년, 나는 경험 부족 상태였고 CSO 무대에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도 CSO는 나를 매우 좋아해주었고 나는 CSO에 대한 경외감을 키우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오랜 인연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여러가지 이유와 기억들이 이 곳에 있다"고 부연했다.
22년간 CSO를 이끈 솔티가 재기 넘치고, 역동적이고, 밀도 높은 퍼포먼스를 보인 반면 바렌보임은 좀 더 따뜻하고 자유로운 서정을 추구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에 대해 바렌보임은 "대단한 음악가이자 위대한 지휘자인 솔티를 무척 존경하지만, CSO를 맡은 후 지휘자의 영향력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CSO 고유의 특성을 살리려 노력했다"며 "지휘자는 오고 가지만, 오케스트라단은 그대로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솔티의 CSO는 바렌보임의 CSO로 전환됐다가 지금은 무티의 CSO가 돼있다. 이번 '재회'는 바렌보임은 물론 CSO 단원들과 관객 모두에게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인 면에서 매우 뜻깊은 이벤트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바렌보임은 "감상적인 기분에 젖게 되지만, 동시에 현재의 CSO와 어떤 협연을 이뤄낼 수 있을 지 호기심도 인다"며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바렌보임은 이번 시카고 방문길에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와 동행했다. 중동 분열을 오케스트라 화음으로 극복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1999년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 이스라엘 출신 청소년들을 모아 결성한 관현악단이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공연은 다음달 5일 시카고 심포니 센터 오케스트라 홀에서 열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