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 후 36년 묵직한 외길 목회인생’ 새가나안교회 은퇴하는 이병홍목사

29일(주일) 오후 5시 나사렛교단 새가나안교회서 교계 지도자 등 참석해 은퇴 축하
 
1981년 미국 유학으로 뉴욕에 도착한 이병홍목사는 1983년 새가나안교회 전신인 뉴욕중앙성결교회를 개척한 이래 36년을 외길 이민목회로 묵묵히 사역해왔다.


자신이 개척한 한 교회에서 36년간 외길 목회에 전념해 온 새가나안교회 이병홍목사가 29일(주일) 은퇴예배를 드리고, 사역 후반기에 들어섰다. 이날 은퇴한 이병홍목사는 “지나온 시간들은 하나님의 시간이었고, 은혜를 부어주신 나날이었다”고 말하고 “여전히 부족한 나 자신을 위해 도우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할 뿐”이라고 은퇴의 소감을 밝혔다. 이병홍목사가 말하는 목회란 무엇이며, 이민목회로 복음을 전파하는 후학 목회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은퇴를 축하드립니다. 새가나안교회에서만 36년을 목회하시고 이제 은퇴를 맞으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1981년 뉴욕에 처음 발을 디딘 지 2년 만에 새가나안교회 옛이름인 뉴욕중앙성결교회를 개척하고 36년이 흘렀습니다. 힘든 과정이야 이루말 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가 많았지만, 그리고 그때마다 “아! 이제 마지막인가 보다”라고 낙심할 때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에도 하나님의 작정하신 계획과 사역들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은혜요 긍휼입니다. 

더욱이 1년 전에 착하고 성실하신 최요셉 목사님을 후임으로 보내주셔서 이렇게 은퇴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하신 것이지요. 이민사회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부방침으로 한인공동체가 매우 위축되고 있고, 또 이민 오시는 한인들의 수도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어서 한인교회도 비상이 걸린 실정입니다.

이와함께 한인 자녀들도 한인교회의 틀을 벗어나는 추세면서 아예 교회를 등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나마 영어권 예배를 드리는 자녀들에게 희망을 걸어 봅니다만, 여러모로 한인교회는 사역의 큰 그림을 그리지 않는 한 빠른시일 안에 현실적인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난 29일 주일, 새가나안교회 성전을 가득메운 가운데 나사렛교단 감독 새뮤얼 바씰목사가 "영예로운 은퇴"라며 이병홍목사 은퇴식을 축하했다. 통역은 메트로 뉴욕지구 나사렛교단 아시안 아메리칸 대표 박해림목사(후러싱제일교회 담임)가 맡았다. 


36년간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감사감사’
“시대변화 반영하는 새 목회 비전 세울 때”
이민환경 급속변화 속 능동적인 새 옷 입어야


교회마다 1세대가 은퇴하는 상황에서 후임 목사님들과 후임 장로님들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객관적인 조건은 매우 걱정스러울지라도 우리 한인들의 특성에 맞는 목회사역의 옷을 입는다면,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저는 단순히 교회법이 정한 연령제한으로 은퇴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목회자는 발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의 변화를 사역적인 면에서 잘 적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목양이 됩니다. 하나님은 젊은 후임 목회자를 통해서 그 시대에 맞는 메시지와 사역을 펼칠 것으로 확신합니다.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목회는 어떤 의미이신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이민목회는 한국에서 하는 목회와 다르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이민목회에 대한 말씀도 아울러 부탁드립니다.

-저는 목회를 ‘목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양은 쉽게 표현하면 ‘케어’(Care)입니다. 요즘에는 ‘돌봄’이라고 표현합니다만, 목회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양을 맡긴 것처럼 목회자에게 맡긴 성도를 어떻게 하면 잘 돌보는 것일까 날마다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루하루 성도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이병홍목사와 함께 목회사역을 감당해온 곽정애 사모. 
 

이것은 부모가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잘하는 것은 잘하도록 권하고, 가르치고, 반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은 하지 말도록 막고, 또 경계하도록 하고 또 가르치는 것이지요. 뿐만아니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가르치고 깨닫도록 하여 영적인 풍성한 양식으로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일이 어렵듯이 마찬가지로 성도를 하나님의 백성답게 성숙하도록 양육하는 일 역시 매우 고되고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모든 목회자는 이같이 어려운 길을 가시는 분들이라 믿습니다. 

“목회는 돌봄과 케어가 중요한 요소”
저는 상담을 공부했고, 학위도 받았습니다. 성도 개개인을 찾아 심방하며 상담하면서 괴로운 일들, 인생의 험난한 일들을 상담하고 위로해 왔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는 개인의 상담에 집중하다가 자칫 전체 공동체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쩌면 편애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늘 성도 전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민목회는 상한 심령 치유하는 특수목회
돌봄이 가장 극대화된 곳이 이민교회 성도
병원사역하던 경험은 이민목회에 도움 커


이민목회는 특수목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 오기 전에 서울 국립의료원와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원목으로 사역했습니다. 일종의 특수목회지요. 이민목회를 여기에 비유하는 이유는, 고향을 떠나 문화와 인종이 다른 나라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인들의 마음과 정신이 예상보다 매우 지쳐있기 때문입니다.

상담사역과 돌봄사역의 비중이 가장 극대화되는 목회지라는 얘깁니다.어렵고 힘든 일이 있었지만, 한국의 병원에서 사역하며 상담목회를 알고 있던 저에게는 큰 힘이 됐습니다. 

은퇴예배 때 설교하신 메트로 뉴욕지구 나사렛교단 새뮤얼 바씰 감독께서 “영예로운 은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목사로 부름받은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장인이신 고 곽재관목사님을 가장 존경하고, 또 그분으로 인해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곽목사님을 알게된 것은 미션스쿨인 영광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교목이셨던 장인어른을 만나게 됐습니다. 유교전통이 강한 경북 영주 3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나, 어린시절 사촌 형수께서 권사로 봉사하던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지만 집안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며 매도 맞고 쫓겨나기도 수차례 하다가 결국 교회출석을 포기하던 때였죠. 
 
은퇴예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뉴욕교계 지도자들. 뉴욕교협 전회장 안창의목사, 신현택목사, 김승회목사, 송병기목사, 뉴욕교협 회장 정순원목사, 뉴욕목사회 회장 박태규목사, 바울선교회 전회장 김석형목사, 한재홍목사, 김용걸신부 등이 순서를 맡는 한편 기념촬영을 찍었다.  


장인 곽재관 목사님을 가장 존경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을 알고 곽목사님께서 제게 교회출석을 권유했을 때 제가 질문한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을 보여주면 예수를 믿겠다”고 했어요. 당돌했지요(웃음). “언제 보여줄꺼냐”고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셨고, 그 체험을 통해 주님의 종으로 서게 됐습니다.

장인어른이신 곽목사님은 일제 때 일본 유학중 민족교육운동 단체인 ‘반디불’ 문학클럽 활동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강직한 성품이셨습니다.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어 현충원에 안장되셨습니다. 그 분의 외동딸이 제 아내입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규수를 가난한 제게 주신 것입니다. 장인어른처럼 강직하게 살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그렇게 살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뉴욕 이민목회를 하시면서 교계를 위해 헌신해 오셨습니다. 은퇴 후의 계획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1983년 9월11일 써니사이드에 있는 태권도장을 빌려 ‘뉴욕중앙성결교회’(새가나안교회 전신)로 개척했습니다. 이후 6곳을 거쳐 현재 퀸즈 스프링필드에 건물을 매입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몇몇 성도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교회당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를 드려봅니다. 
 
이병홍목사와 지난 1년 동안 동사목회를 해온 후임 최요셉목사(우측). 


뉴욕에서 사역하며 선배와 후배 목사님들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6년도에 목사회 24대 회장을, 2006년도에는 교협 32대 회장을 맡았습니다. 그 사이에는 뉴욕성신클럽 회장(2002년), 한민족복음화뉴욕협의회 대표회장(2007년), 국제사랑 미동부지회장(2010년~현재) 등입니다. 

은퇴 후에는 국제사랑재단 사역 힘쓸 터
은퇴 후에는 ‘국제사랑 미동부지회’의 사역을 좀 더 집중해서 하고자 합니다. 대북 민간지원 사업을 주로 하는 단체인데, 중국과 북한 접경지역에 빵 공장을 만들어 중국에서 판매하며 북한에도 지원하는 일을 합니다. 재정지원을 포함해 선교적 사역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예장 통합측 총회장을 역임한 제 스승 고 김기수목사님께서 설립하셨습니다. 김 목사님의 요청으로 뉴욕지회장을 맡았는데, 마지막 사명인 줄로 알고 열심히 하고자 합니다.  

유학의 꿈을 갖고 뉴욕에 온 지 38년입니다. 교회를 개척하며 목양하는 가운데 한국의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교수가 되는 꿈은 점점 사라지고, 이민자들의 애환을 끌어안고 뒹굴다 오늘 은퇴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은혜 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은혜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영호 기자  yyh6057@kukminusa.com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