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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부터 100년 함께한 선교사 2749명 한눈에
내한선교사사전에 수록된 ‘한국 최초의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와 관련된 내용.   내한선교사사전의 표지. 1885년부터 1985년까지 10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사역했던 선교사 2749명의 활동상을 담은 ‘내한선교사사전(내한선교사사전 편찬위원회)’이 발간된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역사연구소·이사장 윤경로 교수)가 펴낸 1520쪽 분량의 사전에는 각 선교사의 출생·사망 년도와 고향, 전공, 파송 단체, 한국에서의 사역 내용, 저서 등이 자세히 수록돼 있다. 이들 외에도 자세한 사역 내용을 발굴하지 ...
입력:2022-12-12 14:05:01
한글 깨치자마자 교리 읽게… ‘가갸거겨’ 옆에 전도지를
1917년 제작된 ‘언문초학’ 원본(아래). 위쪽 사진은 프레더릭 S 밀러 선교사와 부인 수잔 B 도티. 청주성서신학원 제공 절반은 ‘언문초학’이다. 가갸거겨…에 이어 하햐허혀…까지 홀로 읽고 한글을 깨치도록 돕는다. 나머지 절반은 전도지다. ‘하나님이 우리를 내셨나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나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나니라.’ 프레더릭 S 밀러(1866~1937·민노아) 선교사가 1917년 작성해 배포한 ‘예수께서 구원하심’ 제목의 전도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청주...
입력:2022-11-15 14:05:02
기독 문화유산 사료의 보고 ‘디지털 아카이브’ 연내 선뵌다
광주광역시 남구 호남신학대에 있는 선교사 묘원. 국민일보DB   전주 예수병원에 있는 선교사 묘원. 국민일보DB 전국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 문화유산 현황과 역사 등을 총망라한 디지털 아카이브가 이르면 12월 일반에 공개된다. 개신교는 138년의 역사와 함께 무수한 유산을 남겼지만 교단과 대학, 교회가 각각 관리하면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사실상 전무했다. 근대 기독 문화유산 전체를 보려면 전문가조차 일일이 대학과 교회를 찾아다니며 자료를 요청해야 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1884년 호러스 알렌 선교사가 입국한 이후...
입력:2022-10-19 14:05:01
선교사가 세운 ‘사랑방’… 도시 선교 발판 되다
전주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에 전시된 1911년판 구약성경.   광주 남구 우월순 선교사 사택 전경.   일제강점기 3·1만세운동 회합의 공간인 대구 교남YMCA의 야경. 100여년 전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지방 도시에 ‘선교 스테이션’을 세웠다. 지역 선교의 거점이 되는 곳이 선교 스테이션이다. 선교사들은 이곳에 전도와 의료, 교육 시설은 물론 주거 공간까지 세워 주민과 만났다. 말 그대로 ‘선교 사랑방’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인근 도시로 선교를 확장해 나갔다. 전국 각지에 조성된 선교 스테이션은 지금도 ...
입력:2022-10-10 14:05:01
화성 제암리교회, 성경전래기념관… 희생·헌신 위에 핀 복음 역사와 만나다
경기도 화성 제암리교회 마당에 있는 스코필드 선교사의 청동상 모습. 오른쪽 사진은 1919년 3·1운동 때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독립선언문을 등사하던 정동제일교회 파이프오르간 송풍실 출입문. 가을의 기운이 완연하던 지난 5~7일 사흘 동안 전국 각지의 선교 유적을 답사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회장 류영모 목사)이 ‘우리에게 근대문화는 어떻게 왔을까’를 주제로 진행한 기독교 문화유산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1885년부터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 분투했던 선교사들의 ‘복음 가도(街道·복음의 길)’를 따라...
입력:2022-10-09 14:05:01
미국 해외 선교가 시작된 곳 ‘건초더미 기도운동’ 진원 윌리엄스대학 가보니…
기념비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학중 목사.   네모 안은 기념비 의미를 담은 안내판 사진. 기념비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잣나무가 우거진 교정의 한복판에 있었다. 높이가 4m 정도인 기념비의 꼭대기엔 지구 모양의 커다란 구(球)가 놓여 있고, 비석 몸통엔 영문으로 이런 문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우리의 선교지는 세계다. 여기가 미국의 해외 선교가 시작된 곳이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이 기념비를 마주한 곳은 미국 보스턴에서 서쪽으로 260㎞ 떨어진 작은 마을 윌리엄스타운에 위치한 윌리엄스대학이었다. 기념비는 1806년 자...
입력:2022-07-10 14:05:02
1885년 이수정 번역 ‘감리회 교리서’ 찾았다
이수정이 번역한 ‘미이미교회문답’의 표지. 이혜원 교수 제공   미이미교회문답의 첫 장 모습. 이혜원 교수 제공 1885년 한국어 성경 번역 선구자 이수정(1842~1886)이 번역했다는 사실만 알려진 채 137년 동안 번역서의 실물과 제목조차 공개되지 않았던 ‘감리회 교리서’의 실체가 최근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교리서는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명료하게 담아 불신자도 쉽게 이해하고 익힐 수 있도록 편집한 책을 말한다. 이혜원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가 지난달 ‘한국교회사학회지’에 게재한 ‘...
입력:2022-07-06 14:05:01
피로써 지킨 신앙… 그날 밤 35인이 스러졌다
그래픽=이영은, 게티이미지뱅크   상월교회 설립자인 나옥매 전도부인의 묘(위 사진)와 6·25 전쟁 당시 담임 교역자였던 신덕철 전도사의 묘. 이들은 빨치산의 총 칼 위협에도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순교를 택했다.   전남 영암 상월그리스도의교회 이성배 목사가 지난 17일 참배객에게 교회 앞마당에 있는 35인 순교자 기념탑의 설립 과정과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살해 이유는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었다. 전남 영암군 상월그리스도의교회는 한창 부흥하고 있었다. 성도들은 날마다 모이기에 힘쓰고 찬송과 ...
입력:2022-06-24 14:05:01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 탄생 100년… 그 길을 따라 걷다
1976년 안병무(앞줄 왼쪽 두 번째) 선생을 포함해 3·1민주선언 사건 대법원 판결일에 불구속되거나 이미 석방된 피고들이 서울 정동 성공회 대성당에서 기도회를 마치고 법정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길목 제공   18일 열린 '안병무 100년, 그의 길을 따라 걷는다' 행사에서 김남일(오른쪽 세 번째) 작가가 마지막 목적지인 향린교회 앞에서 해설하는 모습. 길목 제공 장마 직전 찜통더위와 함께 이슬비가 내리던 18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 일대에서 민중신학자이자 전 한신대 교수였던 안병무 선생 탄생 100년을 기리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사회...
입력:2022-06-19 14:05:01
개신교 지도자들 6·25 전쟁 때 ‘기독교 의용대’ 조직했다
김흥수(오른쪽 두번째) 기독교사상 주간이 2003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생전의 김병섭(가운데) 장로를 인터뷰한 뒤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흥수 주간 제공 6·25전쟁 발발 직후 일부 개신교 지도자가 국방부와 협의해 ‘기독교 의용대’를 조직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적지 않은 의용대원이 국군과 미군에 편입돼 실제 전투에 참여했으며 당시 미군에 편입된 의용대가 카투사(미군에 배속된 한국군)의 전신이다. 자칫 묻힐 뻔했던 역사를 발굴한 건 윤경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 김흥수 기독교사상 주간 등 역사학자였다. 이들...
입력:2022-06-06 14:05:01
방주가 묻혀 있다는 산 아라라트… 곳곳에 탐사 유적지
터키 아리주 도우바야지트시 노아스빌리지 내 모형 ‘노아의 방주’ 뒤로 아라라트산이 보인다. 임보혁 기자   8일(현지시간) 아라라트산 2200m 지점에 있는 제단 같은 오각형 돌담. 임보혁 기자   홍콩 노아방주선교회 탐사대가 2010년 아라라트산에서 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다며 공개한 영상으로 탐사대가 방주 속에 있던 병아리콩 화석을 채집하고 있다. 영상 캡처 해발 5137m의 터키 동부 아리주 아라라트산 주변엔 4300여년 전, 대홍수 끝에 표류하다 도착한 노아의 방주가 묻혀 있다고 알려진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사람의 ...
입력:2022-05-11 03:08:49
‘야소교는 정치에 관여 않는다’… 고종 마음 움직여
일본 주재 청나라공사관 참사관 황준헌(사진)이 1880년 저술한 외교 방략서 ‘조선책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1883년 미국은 루셔스 하우드 푸트를 특명전권공사로 임명하고 조약을 마무리하도록 조선으로 파견했다. 조선은 천자 제후 대부 사 서의 중화질서 아래 살던 유교 국가였다. 여기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가르침은 조선 사회 자체를 흔드는 것이었다. 조선은 천주교가 가진 위험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여러 차례 박해를 통해 천주교를 막고자 했다. 1866년 병인박해에서 8000...
입력:2022-04-20 14:10:01
‘신문물 최초’가 많은 인천엔 한국 선교 향한 초심이 숨 쉰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5년 7월 인천의 한 초가집을 빌려 아내와 첫 예배를 드렸다. 그 자리에 세워진 인천 내리교회의 현재 모습.   영국성공회 고요한 주교가 1891년 세운 내동성당은 국내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다.   인천 내리교회가 2012년 재건한 웨슬리예배당의 외관.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붕이 십자가 모양으로 돼있어 '십자가 예배당'으로도 불렸다. 1883년 개항한 인천(당시 제물포)은 신문물이 조선에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과 외국 문화의 접점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최초란 말이 들어가는 서양식 호텔, ...
입력:2022-04-10 14:05:03
[한국기독역사여행] 서해 낙도에 뿌린 전도 열정… 복음으로 섬을 잇다
세계로 향한 관문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 영종중앙감리교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적했던 섬 영종도 교회는 공항 개발과 함께 상전벽해의 도시 교회가 됐다. 100여명의 원 교인들은 개발에 따른 물질의 유혹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1500여명이 모이는 예배당을 헌당했다. 아래 사진은 초기 초가 예배당과 성도들이다.   30여년 영종도에서 사역한 황규진 목사가 교회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1948년 오지섭 목사 당시 헌당된 영종중앙교회(당시 운서교회).   장봉도 교회. 오지섭 목사가 산상 부흥회를 이끌던 섬이다.   19...
입력:2021-08-27 04:1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기독 공동체 터전 세우다
전북 고창군 부안면 부안초등학교. 1910년대 일본인 마스토미 장로가 조선인 선교를 위해 오산교회를 세우고, 이어 미션스쿨 흥덕학당과 오산학교(아래 흑백사진)를 설립했다. 현 부안초교는 이 학교가 전신이다. 학교 교정에 1회 졸업생들이 심은 아카시아 한 그루(사진 왼쪽)가 보인다. 마스토미는 1995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마스토미 야스사에몽 (1880~1934)   마스토미 부부와 그의 어머니(앞줄). 뒷줄은 마스토미 지원으로 고베신학교에 유학한 조선인 3인으로 추정된다.   현 오산교회 인근 옛 오산교회 사택. 1980년...
입력:2021-08-13 04:4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사면초가 고난’ 속에도 의료선교의 꽃을 피우다
인천 율목동 인천기독병원 장례식장 뒤편. 붉은 벽돌 건물 가운데 부분이 1930년대 초 미국 감리회 성도들의 선교 헌금으로 건축된 병원 일부다. 아래 사진의 맨 우측.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파괴되지 않고 유일하게 남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후 좌우로 증축했으며 관사·행정실 등으로 사용됐다. 원목 강경신 목사는 “복원을 서둘러 역사 유적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쟁 참화를 딛고 재건된 병원. 1956년 사진.   로제타 홀 (한국명 허을·1865~1951)   병원 내에 있던 인천기독간호대 후신 안산대학.  ...
입력:2021-07-30 04: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숨이 끊어질 듯한 일제 고문 속 주님을 만나다
손정도 목사가 일제강점기 유배(거주제한) 생활을 했던 전남 진도군청 앞 철마광장. 1912년 손 목사 유배 당시 진도 읍성 안으로 주재소 등이 있었다. 사진의 왼쪽 건물 쪽이 손 목사 유배 터다. 멀리 보이는 교회는 진도중앙교회로 1919년 설립됐다.   손정도 목사와 도산 안창호(왼쪽) 선생. 중국 상해 임시정부 시절이다.   1915년 진도 읍성 관아와 읍성 거리 풍경. 사진 왼쪽 초가 등이 손정도 목사 ‘정배소’로 추정된다. 오른쪽 모텔 사진은 정배소 자리다.   손정도 목사는 진도 유배를 끝내고 서울 정동교회에서 목회하...
입력:2021-07-16 04:2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선대가 심은 믿음의 씨앗, 아들·손자 거치며 거목이 되다
충남 부여군 임천면 칠산침례교회 예배당과 칠산리 마을 풍경. 금강을 끼고 있는 한적한 농촌 교회다. 근대도시 군산과 강경 사이 나루터 마을로 19세기 말 침례교 펜윅 선교사 등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고, 칠산리 향반 장씨 가문 3대가 내륙으로 복음을 날랐다. 15년 전 부임한 조용호 목사가 강경교회·공주교회(현 꿈의교회)와 함께 ‘기독교한국침례회 3대 교회’의 위상을 되찾았다. 아래 흑백 사진은 1918~1949년 무렵 두 번째 예배당.   금강권 선교 개척자 펜윅 선교사의 백마를 이용한 전도 행차 모습. 조용호 목사 제공   한국침례...
입력:2021-07-02 04:05:01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김치 항아리에 숨겨 6·25 화마 피했다
사진=옥성득 교수 제공 1961년부터 30여년간 한국 교계에서 공인본으로 널리 사용했던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의 기초가 됐던 52년판 원고(사진)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될 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원고는 인민군의 감시와 전쟁의 폭격 속에서도 대한성서공회 측 관계자의 기지로 김치 항아리에 숨겨진 채 보존될 수 있었다. 지난해 출간된 ‘대한성서공회사 Ⅲ’에 따르면 성서공회는 1949년 11월 38년판 개역 성경전서를 당시 한글맞춤법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옛말을 현대말로, 사투리를 표준어로, 그리고 띄어쓰기 등을 바로 잡는 일이었다....
입력:2021-06-27 14:10:02
[한국기독역사여행] 여성이 꿈을 펼 수 있도록 교육·의료 양 날개로 새 길을 열다
서울 발산동 이화여대 서울병원 내 보구녀관(한옥). 1887년 서울 정동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으로 이화학당 설립자 메리 스크랜턴이 세웠다. 정동 보구녀관은 동대문으로 이전, ‘동대문 이대병원’으로 불렸다. 이화의료원은 2019년 이화여대 서울병원 개원과 함께 보구녀관을 복원, 기독교 선교병원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아래 흑백 사진은 초기 보구녀관이다.   메리 스크랜턴의 외아들 윌리엄. 어머니와 함께 조선에 들어와 의료 사역에 헌신했다.   경기도 수원 매향학교. 메리가 경...
입력:2021-06-18 03:4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암울한 시대 태어난 ‘산토끼’ 민족 계몽의 심장을 깨우다
국민동요 ‘산토끼’ 작사·작곡자 이일래 선생 흉상. 경남 창녕군 이방초등학교 교정이다. 이일래 선생은 1920년대 말 이곳 교사로 근무하면서 나라 잃은 슬픔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산토끼’를 작곡했다.   이일래 (1903~1979)   1936년 12월 14일 크리스마스이브 성극 직후 기념사진. 문창교회로 추정.   1970년대 경기도 남양주 거주 시절 이일래 부부. 제자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있다. 여성동아 제공   1970년대 이방초교 교정. 지금은 학교 주위로 체험 및 기념 시설 ‘산토끼 ...
입력:2021-06-04 03:55:01
[한국기독역사여행] 믿음 안에서 둘이 하나로 ‘구국의 가시밭길’ 동행
지난 주말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백범 김구·최준례 부부 합장 묘역. 세찬 비에 봉분이 유실될까 봐 비닐로 덮어 놓았다. 최준례는 김구의 상하이 망명 정부 당시 그곳에서 산후 영양실조 등으로 숨졌다. 최준례 유해는 상하이에서 옮겨와 경기도 남양주 가족묘에 있던 것을 1999년 이곳에 합장했다. 멀리 아파트 뒤가 일제 주둔지·미군 용산기지 땅이다.   정부 주관 추모식 한 장면.   1924년 상하이 최준례 무덤. 뒤가 김구와 모 곽낙원. 두 아들 신(왼쪽)과 인. 비문은 조선어학자 김두봉이 썼다. 동아일보 보도 사진   서...
입력:2021-05-21 04:50:01
[한국기독역사여행] 한국교회 첫 여성목사, 회개의 신앙을 외치다
신사참배 거부 ‘출옥 성도’ 최덕지 목사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한 경남 고성 은월리교회 현재 모습. 통영 충무교회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았던 최덕지는 도쿄 유학생 남편을 맞아 은월리 시댁 방 한 칸에 가정 제단을 마련한다. 은월리교회 시작이었다. 예장 재건 측은 출옥 성도 중심의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교파다. 아래 사진은 1960~70년대 예배당.   통영 충무교회와 시내가 보인다. 왼쪽 삼도수군통제사 건물(한옥) 부근이 최덕지 생가였다.   통영 기독교 사립 진명유치원 교사 시절 최덕지(맨 뒤 ...
입력:2021-05-07 04:5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신실한 일꾼이 뿌린 믿음의 씨앗, 도처에 나무로 우뚝
경기도 양평군 상심리교회 느티나무홀. 이 교회의 다섯 번째 예배당으로 1985년 입당했다. 이곳에서 100m 지점에 새 예배당이 있다. 남한강 하류 나루터 인근에 있던 초기 예배당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피해를 보고 느티나무홀 자리로 옮겼다. 붉은 종탑은 홍금산 집사 등이 치던 새벽종이다. 아래 사진은 강 남쪽에서 본 상심리 풍경으로 정중앙 붉은 벽돌 건물이 교회 본당이다.   홍금산 집사 (1904~1974)   홍금산·신선자 부부. 1950년대 말로 추정된다.   홍금산 집사의 딸 옥희(왼쪽)·은분 권사. 아기는 손녀.   상심...
입력:2021-04-23 03:1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아버지 순교지에 돌아온 아들, 원수를 사랑으로 갚다
이판일 장로, 이판성 집사 형제의 순교지인 전남 신안 임자도 ‘백산 솔밭’ 현장. 2017년 성결교인들이 순교자의 “용서하라”는 뜻을 받들어 기념비를 세웠다. 신안지역 순교사적지를 안내한 변정섭 목사(왼쪽·목포 옥빛교회)가 대파밭 주인과 대화하고 있다.   이판일 (1897~1950) 열세 살에 두 살 많은 임소애(순교)와 결혼. 슬하에 3남 4녀. 1932년 무렵 문준경 전도사로부터 신앙을 접한 후 임자교회(진리교회) 장로가 됐다. 30년대 후반 교회 사역자가 부임하지 않자 교회를 이끌고 인근 교회를 돌보았다. 일제 말 동...
입력:2021-04-09 04: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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