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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종삼 (12) 노인 요양원 열자 진료 사각지대 어르신들 문전성시
이종삼 목사가 2003년 거제에 설립한 솔향노인요양원 전경. 거제에 처음 생긴 무료 양로원의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어려운 점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어르신이 아플 때마다 너무 먼 곳의 병원까지 가야 했던 점이 고역이었다. 병원은 양로원에서 30㎞ 떨어진 하동에 있었다. 적지 않은 어르신들이 오가는 길에 멀미를 하셨다. 간단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다 더 큰 병을 얻을 것만 같았다. 내부에서는 요양원을 함께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요양원은 환자를 수용해 요양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어 놓은 곳이다. 사역을 확대하기 위해...
입력:2022-07-11 14:05: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11) ‘거제 사랑의 집’ 개원… 소외된 어르신들 보살펴
거제시 거제면의 거제사랑의집 양로원 전경. 이종삼 목사의 복지 사역이 출발한 곳이다. 1999년부터 어르신들을 돌아보게 됐다. 당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노인 비율이 전체 인구 대비 7%를 넘어서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뉴스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고령화 사회란 65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7% 이상인 사회를 말한다. 90년까지만 해도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5.1%에 불과했지만 노인의 수는 빠르게 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불과 45년 뒤인 2067년이면 49.5%가 노인이라는 충격적인 데이터까지 나왔다. 90년대 말 노인 복지에 ...
입력:2022-07-10 14:10: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10) ‘4대 사역’과 ‘희망의 신학’ 보며 내일의 희망 꿈꿔
이종삼(가운데 흰 장갑) 목사가 2019년 거제 옥포 맑은샘센텀병원 개원 1주년 기념 감사예배 후 의료진과 직원, 예배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 9:35) 마태복음의 말씀 속에는 복음전파와 구제, 교육과 치료라는 예수님의 4대 사역 내용이 모두 담겨 ...
입력:2022-07-07 14:05: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9) 거제 경실련과 지역신문 창간… 시민 사회와 함께 성장
거제신문 창간에 앞서 제작한 창간소식지 1호 모습. 이종삼 목사는 초대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1989년 대우조선은 노사 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당시 김우중 회장이 거제에 1년 넘도록 상주하면서 직접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노조원을 만났던 일이 유명하다. 하지만 그때 노조의 실상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이제 막 구성을 시작했던, 연약한 조직일 뿐이었다. 거제YMCA를 태동한 이후 기독교적 색채가 덜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설립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대우조선에 대한 거제 시민 사회의 관심을 키우기 위한 접점으로도 경실련이 필요하다...
입력:2022-07-06 14:10: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8) 거제에도 YMCA 창립… 기독 청년운동의 씨앗 뿌려
이종삼 목사가 만든 거제YMCA 창립을 위한 기도회 모임 안내 쪽지 모습. 부산에서의 10년, 그 기간은 나를 목사로 길렀다. 공부하고 기도하며 목회자의 길을 연습했던 여정이었던 셈이었다. 학교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부산YMCA 활동을 했다. YMCA를 통해 기독 청년들이 가져야 할 세계관과 믿는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다. 1979년 부마 민주항쟁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와 같은 역사의 변곡점마다 YMCA는 기독교인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길을 제시했다. 신앙이 있는 또래들이 모이는 공간이기도 했다. 공부하는 틈틈이 YMCA 사무실을 드나들었...
입력:2022-07-05 14:10: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7) 목회 첫발 내디딘 제2 고향 부산 떠나 고향 거제로
이종삼 목사가 1988년 능포 갈릴리교회에 부임한 직후 ‘늘노래 찬양단’을 초청한 집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고향 거제를 떠난 건 1975년 신학교에 입학하면서였다. 10년 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부산동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꿈에 그리던 목사가 됐다. 신학교가 부산에 있었기 때문에 사역도 자연스럽게 부산에서 시작했다. 아내를 만난 것도 부산 동래중앙교회에서였다. 첫 아이도 부산에서 낳았다. 부산이 제2의 고향이 된 셈이었다. 사역과 생활이 안정될수록 마음 한편이 불편해진 건 첫 약속 때문이었다. 목사가 된 뒤 거제로 돌아와 사역하겠...
입력:2022-07-04 14:05: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6) 모든 게 봄 같았던 ‘1985년’… 결혼과 득남, 목사 안수
이종삼(앞줄 왼쪽 여섯 번째) 목사가 1985년 10월 부산 덕천교회에서 열린 예장통합 부산동노회 정기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로회신학대를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은 ‘광나루 신학교’다. 광나루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학교는 언제나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광나루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한 건 1982년이었다. 당시는 신군부 세력이 득세하던 엄혹한 때였다. 나 또한 격랑에 빠진 일이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었는데 마침 한 살 많은 사촌 형을 만났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광주 사태에 관해...
입력:2022-07-03 14:05: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5) 하나님이 보내준 의문의 합격증… 불합격이 합격으로
이종삼(왼쪽 두 번째) 목사가 1975년 영남신학교 부산신학사 1학년 때 친구들과 소풍을 가던 중 경남 양산 물금역 선로 위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종삼이라는 합격자는 없는데요. 합격증을 받았다고요?” 1982년 2월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 목회연구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는데 입학처에서 놀라운 말을 들었다. 합격한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가 받은 합격증은 무엇이란 말인가. “집으로 합격증을 보낼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불합격이라고 하는 건 무슨 말이고. 이게 말이 됩니꺼?” 억울함을 참을 수 없...
입력:2022-06-30 14:10: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4) “좋은 목사 돼 고향 거제로 돌아와 사역하겠습니다”
이종삼(왼쪽) 목사가 1975년 영남신학교 부산신학사 1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흥회 참석한다고 결석이 잦았던 나였지만 불량학생은 아니었다. 규율부장을 할 만큼 반듯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목사가 되기로 다짐한 뒤로는 마음이 이미 신학교로 향해 있었다. 한시가 급했다. ‘어서 목사가 돼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데….’ 어린 마음에 의욕이 앞섰던 것이다. 신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부산 좌천동에 있던 ‘영남신학교 부산신학사’였다. 이 신학교는 부산장신대의 전신으로 현재 이 대학의 이사...
입력:2022-06-29 14:05: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3) 학교는 빠져도 부흥회는 참석… ‘사랑의 매’도 일상
거제고등학교 규율부장이던 이종삼(오른쪽) 목사가 1974년 친구인 진상권 구미 양무리교회 목사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부흥회 가겠다고 결석을 하던 나는 참 별난 학생이었다. 결석했다고 그렇게 혼나면서도 거제에서 부흥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참석했다. 고등학교 2학년 늦가을로 기억한다. 거제제일교회에 부흥사인 신현균 목사님이 오셨다. 민족복음화운동본부를 비롯해 10여개 부흥단체를 설립하고 수많은 부흥사를 양성하셨던 신 목사님은 그 시절 부흥 사경회의 유명 강사였다. 그 신 목사님의 부흥회를 놓칠 수 없었다. 사실 이 부흥회에 참석하기 전 거...
입력:2022-06-28 14:10: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2) 교회 재건 도움 청하려 한경직 목사 찾아 서울행
이종삼(왼쪽 두 번째) 목사가 1973년 덕포교회를 짓기 위해 건축 자재를 나르던 중 친구들과 함께한 모습. 목사님은 교회가 무너진다고 하셨지만 우리 눈에는 멀쩡해 보였다. 그러던 중 군에서 막 제대한 큰 형님에게 초가 교회를 허물어 달라고 부탁했고 형님은 곧바로 친구 두 명과 지붕에 올라가셨다. 곡괭이로 서너 번 쳤을까. 거짓말처럼 교회가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지붕에 올라갔던 이들은 뽀얀 먼지 속에서 걸어 나왔다. 작은 초가집, 덕포교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목사님께도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벽돌 만드는 기술자를 보내 주셨다. 예배는 교회가 무너...
입력:2022-06-27 14:05:01
[역경의 열매] 이종삼 (1) 어린 시절 놀이터이자 내 신앙의 뿌리 덕포교회
이종삼 성념의료재단 이사장이 최근 경남 거제시에 있는 자신의 서재에서 성경을 읽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내 고향은 경상남도 거제시 덕포다. 거제도의 오른쪽 끝자락 바닷가에 있는 마을에는 사계절 짠 바닷바람이 불었다. 가난했던 시골 마을에도 교회가 있었다. 1951년 6·25전쟁 중 북한에서 피란 온 한 장로님이 세운 덕포교회였다. 내 신앙의 뿌리와도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교회를 세운 장로님은 개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그 뒤로 다시 덕포를 찾지 않으셨다. 작은 교회에 기대 사는 교인들은 목자 없는 양떼와도 같았...
입력:2022-06-26 14:05: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15·끝) “주의 힘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 장래에 전하리라”
2014년 목포CCC 창립 50주년 감사예배에서 송태후 장로가 아내 김경옥 권사와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시력을 잃은 송 장로에게 김 권사는 눈과 같은 존재다. 2020년 12월 당시 김종식 목포시장께서 기독교계와 시민에게 공약한 역사관을 건립하는 데 앞장서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으나 김 시장은 목포기독교역사관은 내가 나서야만 할 수 있다며 간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요청했다. 김 시장의 청원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2개월간 기도하면서 김 시장의 청원이 하나님의 뜻이라 인정하게 됐다. 지난해 2월부터 하나님의 전략을 묵상...
입력:2022-06-23 14:05: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14) 양분된 목포 교계와 교회… 기도로 하나 되다
5000여명의 성도들이 2007년 4월 15일 목포KBS 스포츠홀에서 개최된 ‘1907 대부흥 100주년 김장환 목사 초청 대성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왼쪽 사진은 송태후 장로가 대표기도 하는 모습. 1996년 기독교 전문점 경영자로 재출발하면서 소속된 노회에서도 임원으로 봉사하게 됐다. 지역 사회 여러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협력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모든 봉사 요청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묵상하며 신중히 기도했다. 기도하며 원칙을 하나 세웠는데, ‘복음으로 연합할 수 있는...
입력:2022-06-22 14:10: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13) 다음세대 복음화 위해 바나바처럼 섬기기로 다짐
2015년 11월 열린 ‘영적 강국을 향한 정면 승부’ 집회를 마치고 강사와 출연진 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971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복음임을 깨닫고 “주여 저로 하여금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다음세대 복음화를 위해 담당 사역자들과 선교 기관을 돕고자 바나바처럼 섬기기로 다짐했다. 바나바는 바울을 발굴해 이방인 전도자로 일선에 내세운 바 있다.(행 9:26~27). 나는 73년부터 ‘오늘의 학원 복음화는 내일의 세계 복음화’라는 사명으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사역을 위해 기도와 헌금...
입력:2022-06-21 14:10: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12) 성령의 은혜로 가정 회복… 어린 시절 트라우마 치유
송태후(맨 뒷줄 왼쪽 첫 번째) 장로가 1998년 목포 제3기 독수리제자훈련학교를 수료하면서 수료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주변의 권유를 받아 1998년 예수전도단의 비즈니스를 향한 독수리제자훈련학교에 참가했다. 이론 강의와 전도 여행 코스로 진행된 훈련은 나를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교육과정 중 내적치유 사역은 깊이 감춰진 내면의 트라우마를 꺼내 치유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시간이었다. 내적치유 과정 나흘째 밤, 예배를 드리던 내게 성령의 뜨거운 불이 임하며 깊은 상처가 드러났다.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에 찬 복수심이었다....
입력:2022-06-20 14:10: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11) 1급 시각장애 이겨내고 전문경영인으로 거듭나
김준곤(왼쪽 네 번째) 목사가 2006년 당시 목포에서 열린 집회를 마치고 송태후(왼쪽 두 번째) 장로가 운영 중인 기독교 서점 ‘예수마을’을 찾았을 때 CCC 나사렛형제들과 함께 기념 촬영한 모습. 전남 목포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1986년 2월 10평 남짓한 기독교 서점을 열어 직원을 두고 관리했다. 그해 3월에는 다니던 목포제일교회에서 35세란 젊은 나이에 장로로 임직을 받았다. 서점 사업은 점점 번창했다. 88년에는 두 배로 확장했고 91년엔 40평 규모로 확장, 이전했다. 2000년에는 60평 규모로까지 커져 시내 중심가로 확장, 이전할 수 있었다. 지...
입력:2022-06-19 14:05: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10) 시야 점점 좁아져 “시력 회복해 주세요” 절박한 기도
송태후(왼쪽 두 번째) 장로가 1995년 러시아 모스크바 쁘리스뿔리나야교회 앞에서 이 교회를 개척한 남윤환(맨 왼쪽) 선교사, 교회 성도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남 선교사는 송 장로가 모스크바 포드록안과종합병원에서 안과 치료를 받도록 도와줬다. 나는 1965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야맹증과 약해진 시력으로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밤에는 활동을 자제하며 학업에 충실했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전문 안과 병원을 가보지 못했다. 73년 교사 발령을 받은 뒤, 첫 여름방학을 맞아 전문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교사...
입력:2022-06-16 14:05: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9) 최변방 외딴섬 발령… 친지들 “가거도가 웬 말이냐” 탄식
송태후 장로가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방파제 위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고 있다. 전남 완도와 목포에서 16년의 교육 선교사 사역을 마치고 순환 근무 원칙에 따라 1989년 3월 1일 신안군 흑산면 소흑산(가거도) 항리분교로 발령을 받았다. 주변 친지들은 ‘가거도 발령이 웬 말이냐’라며 탄식에 가까운 위로를 보내왔다. 최선을 다해 교사로 일했는데 대한민국 최변방이자 중국의 닭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깝다는 가거도로 발령 낸 교육 당국과 하나님마저도 원망스러운 기도가 터져 나왔다. 초등학교 3학년, 6학년에 다니는 두 자녀와 아내를 ...
입력:2022-06-15 14:05:02
[역경의 열매] 송태후 (8) 대학 졸업 후 교육 선교사로 첫발… 마을 교회 예배 회복
송태후 장로가 1975년 전남 완도군 군외면 영풍리교회에서 교회학교를 열고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 당시 군외동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송 장로는 폐허가 된 예배당을 수리하고 학교 아이들을 전도했다. 1973년 2월 목포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는 대학을 졸업하는 우리를 직장 선교사로 파송했다. 당시 지도 간사였던 고(故) 채남선 목사는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선교 길에 오른 바울과 바나바처럼 직장에서 어떤 고난에도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며 하나님 나라 사역자로 일할 것”을 권면했다. 그해 5월 나는 교사로 발령받아 전남 ...
입력:2022-06-14 14:05: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7) 열방을 향한 기도에 “선교의 마음 열리고…” 큰 울림
2014년 8월 김재성 선교사가 사역 중인 필리핀 세이브 보고교회 설립 예배를 마치고 현지 성도들과 함께 찍은 사진. 해발 800m 고지 산족 마을에 있는 이 교회를 목포제일교회 설립 60주년 기념으로 박승호 담임목사님과 함께 찾았다. 1990년 필리핀 마닐라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후 섬기던 목포제일교회에서 선교부장으로서 10년 넘게 봉사했다. 91년부터 94년까지 세 차례 단기선교팀을 인솔해 교회에서 후원한 김정웅 선교사의 태국 촌부리선교센터를 지원하는 선교 활동도 다녀왔다. 단기선교는 매회 자비량으로 자원하는 교회 직분자들과 청년들이 10여명 넘게...
입력:2022-06-13 14:05: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6) 필리핀에 단기 선교사로 참여… 세계 복음화에 한몫
1990년 8월 필리핀 만달리옹에서 ‘사영리’ 전도지로 현지 아이에게 복음을 전하는 송태후 장로.   송태후 장로가 만달리옹의 달동네에 사는 한 가정을 방문해 복음을 전하고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1980년은 우리나라와 민족에 큰 격동의 해였다. 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12·12 군사 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국가적으로 암울한 때였지만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은혜로 ‘80 세계복음화대성회’가 8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렸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100만명 이상의 성도들은 4박 5일로 ...
입력:2022-06-12 14:10: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5) 50년 넘게 이어온 나사렛형제들과 아름다운 동행
송태후(맨 앞줄 오른쪽 세 번째) 장로가 목포교대 CCC 나사렛형제들 홈커밍데이에서 함께한 모습. 1968년 1월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학사회, 즉 CCC 졸업생 수련회에서 ‘나사렛형제들’이 발족했다. 당시 ‘삼중 헌신’과 ‘5대 행동강령’을 담은 나사렛형제들의 헌장이 선포됐다. 삼중 헌신이란 ‘주님께 헌신’ ‘민족의 입체적 구원에의 헌신’ ‘형제들에의 헌신’을 말한다. 5대 행동강령은 ‘말씀’ ‘기도’ ‘전도’ ‘사랑’ ‘협심’이다. 목포 나사렛형제들...
입력:2022-06-09 14:10: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4) 올바른 ‘말씀과 기도’의 길 인도해 준 영적 지도자들
송태후 장로가 1995년 ‘20일 금식기도’를 마친 후 식사하는 모습. 송 장로는 중2 때부터 안 좋았던 시력이 악화돼 결국 이듬해 교직을 그만두게 됐다. 송 장로에게 있어 금식기도는 하나님과 깊은 대화의 시간이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7~18) 크리스천의 두 날개는 말씀과 기도라고 한다. 올바른 말씀의 날개와 기도의 날개가 균형 있게 펼쳐질 때 크리스천의 삶은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가 부어지게 된다. 내가 처음 예수를 ...
입력:2022-06-08 14:10:01
[역경의 열매] 송태후 (3) CCC는 영적 못자리요 어머니… 영적 삶의 기본기 다져
CCC 청년들이 1982년 즈음 충북 영동군 심천면 미루나무 섬에서 열린 수련회에서 기도하는 모습.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20) 대학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한국대학생선교회(CCC)는 내 영적인 못자리요 어머니다. 캠퍼스에서 아침 기도회, 회관에서 채플과 소그룹모임, 순장 훈련과 섬김, 전도와 양육 등을 하면서 나의 영적 삶의 기본기가 든든히 다져졌다. 방학 때마다 열리는 여름 수련회와 겨울 금식 ...
입력:2022-06-07 1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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