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핵 신고 보류하고 영변과 종전 빅딜”, 북한 주장 대변 논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4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내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북한의 핵 신고를 보류하고,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을 맞바꾸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강 장관은 핵 신고 이후 검증 과정에서 북핵 합의가 깨졌던 과거 사례를 거론하며 “우리는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싶다”고 했다.

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조치부터 취해 신뢰를 쌓고 속도를 내자는 취지지만 비핵화의 핵심을 피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장관은 3일(현지시간) 보도된 미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핵무기 목록을 요구하면 이후 검증을 놓고 이어질 논쟁에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2008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플루토늄 시설에 대한 수천 페이지의 자료를 넘겨받은 뒤 협상이 오히려 악화됐던 사례를 언급하며 “핵 신고를 검증할 상세한 프로토콜을 만들어내려고 하다 결국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2008년 5월 평양을 방문한 성 김 당시 미 국무부 한국과장에게 1만8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핵 신고 자료를 전달했지만 검증의정서를 놓고 충돌해 6자회담이 중단된 일을 상기시킨 것이다.

WP는 “한국은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 보유 목록을 요구하는 것을 보류(hold off)하고, 북핵 시설의 검증된 폐쇄를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강 장관은 또 “북한이 제시한 것은 핵 프로그램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종전선언과 같은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그렇게 한다면 이는 비핵화를 향한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강 장관은 4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비핵화의 본질을 피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신고와 검증은 분명히 필요한 핵심 부분이지만 그것이 어느 시점에 들어갈지에 대해선 결국 미국과 북한의 협의 결과로 나와야 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거 방식과 조금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융통성은 우리는 물론이고 미국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미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WP는 “한국이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라며 미 국무부가 이에 대한 언급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핵 신고가 선행돼야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핵 신고가 핵 폐기의 시작이자 핵심인 이유는 이것이 확보돼야 전체 로드맵과 시간표를 짤 수 있기 때문이다. 핵 신고를 미뤄놓고 종전선언을 하는 건 미국 입장에선 후퇴다.

북한 역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먼저 꺼내긴 했지만 그 대가로 종전선언이 거론되는 데 대해선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일축한 상태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일 영변 핵시설을 ‘우리 핵 계획의 심장부와 같은 시설’이라고 하면서 추가 상응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는 협상에서 더 많이 얻어내기 위한 수사라는 지적도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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