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후반이었던 1983년 처음 영국에 갔습니다. 랭귀지 스쿨에 다니며 하숙을 했습니다. 영어와 보수적 문화가 목을 죄는 듯했습니다. 하숙집 주인은 요구가 많았습니다. 저녁은 5시30분, 안 먹으려면 하루 전에 알려 주고 그릇은 항상 개수대에 놓으라 했습니다. 불편했습니다. 저녁을 먹든 안 먹든 값은 한국의 아버지가 지불한 것이고 하숙비를 냈으니 그만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주인아주머니가 자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빠가 있는데 다리 하나를 잃었어. 참전했다가 부상당했지. 그때 오빠 나이가 너와 비슷해.” “어떤 전쟁이었죠?” “한국전쟁.” 순간 저는 벌떡 일어나 90도로 절했고 뭐든 순종하겠다고 했습니다. 일찍 귀가했고 방 청소와 빨래도 스스로 했습니다. 언젠간 그 희생에 보답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다리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셨습니다. 33세 유대 청년의 피가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피입니다. 나를 구원할 능력은 오직 보혈밖에 없기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는 신의 무릎입니다.

한별(순복음대학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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