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영변 핵시설 폐기-일부 제재 완화 주고받을 듯

사진=AP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내놓을 ‘하노이 공동선언’은 28일 단독 회담에서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두 사람은 정상회담 첫날인 27일 20분의 짧은 회담, 90분간의 만찬을 함께하며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여전히 채우지 못한 빈칸이 있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협상 결과를 보고받은 상태에서 서로 내주고 받을 것들에 대한 탐색전을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노이 공동선언의 골격은 지난해 6·12 1차 정상회담에서 나온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재확인하면서 4개 항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열거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는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통해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전쟁 포로·실종자들의 유해 송환 및 수습에 합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패와 직결된 사안은 비핵화 조치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원론적이고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던 만큼 이번에는 눈에 보이는 이행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영변 핵시설 가운데 무엇을 언제까지 폐기할 것이냐다.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간 하노이 실무협상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북·미 양측은 영변을 정상회담 합의문에 넣자는 데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그 대상과 시기 및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놓고는 여전히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27일 “북·미가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에서 아직까지 완벽하게 합의를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정상 간 담판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파격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협상 스타일이라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변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영구 폐기 의사를 밝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일각에선 영변 핵시설을 쪼개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상응조치를 주고받는 식으로 북·미가 접점을 찾을 거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영변에는 5㎿ 실험용 원자로와 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 핵연료봉 제조시설 등이 산재해 있다. 영변이 북한의 핵능력을 상징하는 핵심 시설이긴 하지만 이곳을 폐기한다고 해서 북한의 미래 핵능력이 완전히 없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에는 영변 외에도 추가 핵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이미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로 영변 폐쇄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를 허용했고, 2012년 2·29 합의 땐 한발 더 나아가 영변 우라늄 농축 활동 임시 중지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은 전례가 있다.

영변 폐기와 맞물려 있는 의제는 제재 완화다. 북한은 영변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미국에 제재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미국은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기 전까지 제재가 유지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와 미국의 독자 제재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비핵화에 아무 진전이 없는데 제재 숨통을 틔워주면 안 된다는 미 내부 여론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단 남북 경협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차원에서 제재 문제가 회담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인터넷매체 복스는 26일(현지시간)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북·미가 영변 핵시설 폐기와 남북 경협을 위한 일부 제재 완화에 잠정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미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 좌담회 및 특파원 간담회에서 남북 경협에 대한 제재 면제 가능성을 언급했다. 문 특보는 유엔 차원에서 제재 완화를 위한 새 결의안을 마련하는 방식에 대해 “가장 현실적인 옵션”이라며 “노력을 해봐야 된다”고 했다.

금강산 관광은 여건이 조성되면 1순위로 재개될 사업으로 꼽힌다. 개성공단에 비해 대북 제재에 저촉될 여지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직접 언급한 사안이라 북한은 이 중 하나라도 현실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노이 공동선언에는 북·미 간 연락사무소 개소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북·미 양측은 실무협상 단계에서 연락사무소 개소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고, 상당부분 진척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가 상대국에 연락관을 파견하고 그들이 머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북·미 간 소통이 상설화·안정화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북·미는 이와 함께 북한 지역에 묻힌 6·25전쟁 전사자 유해를 공동 발굴하는 데 합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따라 지난해 7월 미군 유해 55구를 미국에 송환한 바 있다. 북·미는 이후 유엔사·북한군 채널을 통해 미군 유해의 추가 송환과 공동발굴 사업을 논의해 왔다.

비핵화 로드맵은 다음 협상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북·미는 이번 정상회담에선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하고, 비핵화 시간표를 작성하기 위한 실무그룹을 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노이=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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