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조치·제재 해제’ 입장 차 뚜렷… 협상 장기 표류 불가피

4박5일간의 베트남 공식친선방문 일정을 마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중국과 국경을 접한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전용열차에 오르면서 환송 나온 현지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비핵화 조치와 대북 제재 해제를 놓고 좁히려야 좁힐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한 북한과 미국은 당분간 내부 평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 간 담판에 기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다시 대화를 시작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재로선 북·미 모두 협상을 재개할 뚜렷한 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북·미가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내놓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회담 결렬 책임은 상대방의 결단 부족에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이어갈 용의가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반박하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주장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재반박하는 식의 진실공방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양쪽 모두 상대를 과하게 자극하는 언행은 삼가고 있다. 회담 결렬 후에도 대화 판을 완전히 엎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상황 관리를 위한 제스처일 가능성이 높다. 정상들 간 결단을 하는 톱다운 방식의 협상이 무산된 만큼 이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번 회담에서 드러난 북·미 간 입장차는 단기간에 해소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비핵화 조치가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5건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결의 해제를 요구했다. 리 외무상은 이를 “현 단계에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고 하면서 “앞으로 미국 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폐기하겠다고 한 영변 시설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북한이 원하는 유엔 제재 결의를 해제하려면 영변 이상의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3일 “북한은 최고 지도자가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만든 사람들을 징계하고 협상 전략을 새로 세우는 등 내부 정비에 몇 달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미국 내에 협상 재개론을 불붙이고, 한국 정부를 활용해 유리한 고지에서 대화를 재개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영변 외 다른 핵·미사일 시설의 신고·폐기·검증이 목표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과거 북핵 협상에서 ‘딜 브레이커’(협상 결렬 요인)로 작용했던 핵 시설 신고를 잠시 미뤄놓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핵심 과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제재 해제에 사활을 거는 북한의 ‘약점’을 봤다. 어느 시점에는 협상을 재개하겠지만 그때까지 북한보다는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상황 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국내 정치적 상황도 북·미 대화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향후 비핵화 협상은 이미 실패한 ‘영변 대 제재’의 틀을 넘어 전체 비핵화 로드맵을 다루는 빅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만나 빅딜을 시도하기까지는 길고 긴 실무협상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번 주 워싱턴을 방문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대응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일 폼페이오 장관과 전화 통화를 갖고 조속한 시일 내 만나기로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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