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턴상 수상 한경직 목사 참회 눈물 이후 교계 회개 움직임

신사참배에 항거하다가 투옥됐던 목회자들이 1945년 8월 17일 평양 산정현교회에 모여 한국교회 재건 문제를 놓고 논의를 했다. 당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투옥된 70여명의 목회자와 성도 중 50여명이 순교하고 17명만 살아서 출옥했다. 국민일보DB




신사참배 회개의 역사는 한국교회의 진실한 회개가 미흡했음을 보여준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투옥됐던 70여명의 교직자 중 50여명이 순교했다. 17명의 교직자가 살아서 1945년 8월 17일 출옥했다.

이들은 자신의 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2개월 동안 신사참배에 항거하다가 폐쇄된 산정현교회에 모여 한국교회 재건을 논의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신사참배를 했던 지도자들이 최소한 2개월간 근신하면서 통회자복할 것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교회 재건 원칙 5개 항을 결정했다.

재건 원칙이 발표되자 적지 않은 교회가 호응했다. 그러나 신사참배를 주도했던 기존 교회 목회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1938년 총회장으로서 신사참배 결의를 주도했던 홍택기 목사는 “옥중에서 고생한 사람이나 교회를 지키기 위해 고생한 사람이나 그 고생은 마찬가지였고 교회를 버리고 해외로 도피 생활을 했거나 혹은 은퇴 생활을 한 사람의 수고보다 더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옥 성도와 신사참배에 적극 참여한 기성 교회 지도자 간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북 16개 노회로 구성된 이북 5도 연합노회가 모였다. 이 연합노회에선 양측 입장을 고려해 약간 완화된 안을 의결했다. 그러자 출옥한 이기선 목사를 중심으로 교회 재건 원칙을 그대로 실시하는 교회들이 기성 노회와 결별하고 혁신 복구파를 만들었다.

한편 남한에서도 남부대회가 열려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한다는 결의만 했을 뿐 문서로 된 성명서는 없었다. 총회 회의록으로 기록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 결정에는 출옥 성도들의 재건 원칙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결국 경남노회를 중심으로 1952년 고려파 교단이 분리해 나갔다.

이렇게 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고신이 분열하고, 53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까지 분열하자 장로교 총회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4년 4월 26일 경북 안동의 안동중앙교회에서 제39회 장로교 총회가 열렸다. 총회는 신사참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옥한 이원영 목사를 총회장으로 세워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3가지 중요한 결정을 했다.

첫째, 1938년 27회 총회 때의 신사참배 결정을 취소하고, 취소 성명서를 전국 교회에 공포한다. 둘째, 총회 기간 중 두 번의 통회자복하는 기도 시간을 갖는다. 셋째, 각 교회가 신사 불참배로 순교한 순교자 가족을 돕는 헌금을 실시한다.

이 총회 결의는 제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를 공식적으로 취소했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두 번의 회개 시간을 가지고 순교자 가족들을 위한 헌금을 하기로 한 것도 적지 않은 진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흡한 것이 많았다. 먼저 성찬식 전 회개 시간에 대해서는 총회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다. 둘째 날 새벽기도 시간의 회개는 참석자가 거의 없어 실제적인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신사참배 회개가 총회의 회개로만 끝나고, 전체 한국교회 차원의 회개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런 분명한 한계가 있는 데도 한국교회의 회개는 제39회 총회의 회개로 모든 것이 정리된 것처럼 오랫동안 침묵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이 침묵을 깨뜨린 사람이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였다. 한 목사는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자신이 신사참배 한 죄를 처음으로 고백했다. 그리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한 목사의 참회를 계기로 참회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사참배 60주년이었던 1998년 9월 9일 한국개신교원로장로회 주최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450여명의 원로목사, 장로들이 참석해 금식하며 신사참배를 회개했다. 이후 예장통합 평양노회에서는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함께 주기철 목사를 복권했다.

또 신사참배 결의 70주년이 되던 2008년 9월 9일 15개 기독교 단체가 연합기도회를 개최하고 70년 전 신사참배에 대해 회개했다. 그해 9월 24일에는 예장합동과 통합 합신, 기장 등 4개 장로교 교단 총대들이 제주도에서 연합 집회를 열고 신사참배를 회개했다.

이어 신사참배 80주년이 되는 2018년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고 회개의 무릎을 꿇었으며, 예장합동 총회에서도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 기도가 있었다. 또 서울 광화문에서는 여러 연합기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신사참배 회개를 위한 기도대성회가 열리기도 했다.

최근 이와 같은 회개의 분위기가 있음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신사참배라는 과거의 치욕적 죄악이 모두 해결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과연 7년간 한국교회 전체가 지었던 그 거대한 죄악이 몇몇 지도자만의 회개로 씻어질 만한 문제일까.

여전히 다수의 교회가 신사참배의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병에 우리의 회개 눈물이 아직 차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오창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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