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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글값이 너무 싸다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된 뒤 주변 사람들이 “인생 2막이 활짝 피었네”라며 덕담했다. 덩달아 그런 줄 알았다. 원고 청탁을 받아보고 환상이 깨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전시에 관한 비평이었는데 고료가 A4용지(12포인트) 장당 4만원이었다.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니 장당 7000원꼴이었다. 공립미술관 도록 글도 원고지 장당 1만원이었으니 도긴개긴이다.

신문 기사와 달리 비평 글은 분량이 200자 원고지 60∼80장으로 길다. 한 편을 쓰려면 두 달여 주말을 반납해야 한다. 말 그대로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고료 책정 기준에 대해 물어봤다. 문체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기준에 근거한 거라고 했다. 문학판도 사정은 비슷했다. 평론가 S씨는 “지난해 가을 평론 80장을 써주고 1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대형 출판사가 발행하는 문학잡지인데도 그렇게 인색했다.

우리 사회 ‘글값’이 너무 싸다. 미술평론가 조은정씨는 “1980년대에 J씨로부터 전시 서문을 받았을 때, 고료로 20만원이 나갔다. 당시 대기업 초봉 27만원에 비해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기억했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씨는 “지금은 50만∼150만원 한다. 전시 서문이 그나마 비평 글 중에서는 가장 센 편인데…”라고 했다. 라면, 김밥도 값이 올랐지만 글값만은 제자리다. 요즘 대기업 초봉을 생각하면 오히려 하락했다. 모든 제품과 서비스 가격 상승에 반영된 노임 상승은 글쓰기 노동에는 반영이 안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유는 여럿 있겠다. 사회 전반에 퍼진 반지성주의를 꼽을 수 있다. 대학조차 상업화되면서 인문학적 사유와 창작의 산물인 글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비평 수요의 하락도 요인이 된다. 시장의 힘, 대중의 힘이 세졌다. 미술의 경우 경매에서 비싼 게 좋은 작품이라는 인식이 퍼지며 비평 무용론마저 나온다. 심지어 고료를 주지 않는 미술잡지도 있다. “글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라”는 갑질이다.

그런데 화가, 조각가 등 미술 작가에 대한 처우가 5년 전까지만 해도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국공립미술관이나 비엔날레에서 전시할 때 작가들은 제작비도 건지지 못하고 운송·설치에도 동원이 됐다. “전시 시켜주니 고마운 줄 알라”는 태도였다. 10여년 전부터 작가들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작가 보수(아티스트 피) 문제가 공론화했다. 소송을 불사하는 작가도 있었다. 이에 문체부가 2017년부터 ‘미술창작 대가 제도’를 시범도입해 국공립미술관에 적용하면서 작가 보수 개념이 생겼다. 미술 작가들은 지금은 기존 작품을 전시장에 내놓을 때도 작가 보수로 최소 50만원은 받는다. 원로 작가 개인전의 경우 작가 보수로 500만원까지 책정된다. 신작을 제작할 때는 재료비는 물론이고 작품 설치에 따른 노임도 일당으로 환산해 준다. 서울의 공립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조각가 J씨는 “운송과 설치비로 15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비평도 창작 노동의 산물이다. 그런데도 글값에 대해서는 정신적·육체적 노동 시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미디어 아티스트는 작품 구상과 설치·제작에 들어가는 노동에 대해 시간 단위로 환산해 주면서 비평가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구상과 취재, 자료 구입에 드는 비용을 완전 무시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문체부는 올해부터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를 개정해 지급 기준을 고시했지만 평론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이 없다. 비평이 무용지물이라는 인식은 단세포적이다. 문화계 인사인 심정택씨는 “한국 미술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데는 미술 글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 그 경쟁력은 원고료 현실화 등 인프라가 구비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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