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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가치 담아내는 축제 플랫폼 만들어야죠”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스파프) 예술감독이 지난달 중순 서울 대학로 예술경영지원센터 인근 카페에서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스파프는 한국의 대표적 공연예술축제지만 2015년 예술경영지원센터 이관 이후 기대됐던 서울아트마켓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침체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 감독은 임기 5년간 스파프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지훈 기자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전환'을 주제로 동시대 가치의 전환 속에 예술의 역할을 묻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올해 축제에 초청된 해외 작품인 프랑스 현대무용단 컴퍼니XY의 ‘뫼비우스’. ⓒ Pascale Cholette


올해 축제에 초청된 국내 작품 극작가 그룹 호랑이기운의 ‘콜타임’. ⓒ유경오-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난해 12월 말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스파프) 신임 예술감독으로 최석규 프로듀서를 위촉했다. 춘천마임축제(1994~2009년) 부예술감독을 거쳐 안산국제거리극축제(2012~2013년)와 한·영예술교류의 해 2017-18(2015~2018년) 예술감독, 서울아트마켓(2020~2022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한 최석규 스파프 감독의 임기는 무려 5년. 국내 공연계에서 ‘파리 목숨’에 비유되는 예술감독의 임기를 처음부터 이렇게 장기간 보장한 사례는 처음이다. 공연계는 최 감독이 침체한 스파프를 되살릴 적임자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스파프는 규모 면에서 한국의 대표적 공연예술축제지만 2001년 설립 때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시에 따른 운영주체와 조직의 잦은 변경에 시달렸다. 가장 최근 변경은 2015년 15회를 마친 직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에서 예경으로 이관된 것이다. 서울아트마켓(PAMS·팸스)을 운영하는 예경이 스파프를 함께 운영함으로써 한국 공연의 해외 진출 시너지 효과를 높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예경으로 넘어간 스파프는 예산, 인력, 위상 등 여러 면에서 예술위 시절보다 약화됐다. 팸스와 시너지는커녕 공연 유통 플랫폼으로서 역할도 제대로 못 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예경은 스파프가 2010년 민간 조직에서 예술위로 흡수되면서 사라졌던 예술감독직을 부활하기로 한 뒤 전문가 추천과 면접을 통해 최 감독을 낙점했다. 최근 최 감독을 만나 스파프의 변화 방향과 계획을 들어봤다.

“올 초부터 극장, 예술가, 예술단체, 프로듀서 등 스파프의 다양한 스테이크홀더(이해관계자)를 거의 매일 만났습니다. 축제의 많은 부분이 협력이기 때문입니다. 축제의 예술적 비전을 찾기 위해 고민했고 동시대 관점과 시대적 가치를 담아내는 작품들을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최 감독은 스파프의 변화를 위해 협력을 통한 창·제작 및 작품 유통 기능 강화, 전문성이 강화된 유기적 조직 구조화, 초지역성을 기반한 국제 공연예술 플랫폼, 동시대 예술의 능동적 관객 커뮤니티 지향 등 4가지 방향성을 꼽았다. 5년간 ‘예술의 다양성·포용성’ ‘예술과 기후 위기’ ‘예술과 도시’ ‘예술과 기술’ ‘예술의 새로운 이동성’ 등 5개 주제를 축제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올해 축제 주제는 ‘전환’입니다. 기술·환경·정치·사회구조의 변화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화두로 던져졌습니다. 형식의 전환만이 아니라 동시대 가치의 전환은 무엇인지, 그 가운데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축제를 목표로 합니다.”

스파프와 함께 팸스 등 예경의 다양한 국제 교류 사업과 유기적 관계 구축도 최 감독의 과제다. 사실 스파프의 새로운 미션은 그가 2020년 팸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한 이후 추구해온 변화와 일맥상통한다. 바로 공연예술의 해외 진출과 유통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 한편 국내외 다양한 조직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처음 팸스가 설립될 때는 국내 작품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지 않을 때라 작품 투어 지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축제와 공연장이 점점 국제교류 플랫폼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팸스는 이들과 협업하지 못했습니다. 공동제작이나 레지던시 같은 유통방식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거죠. 공연계에서 유통의 개념이 작품 투어만이 아니라 콘셉트 투어로 확대되는 것도 최근 주목해야 할 변화입니다.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선보인 ‘갈라’는 안무가 제롬 벨의 콘셉트가 유통된 작품이었는데, 프랑스 창작팀과 한국의 제작팀이 온라인으로 협력해 무대에 올렸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한 관객들의 새로운 소비 스타일,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파,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 등이 커지면서 이런 경향이 점점 퍼지고 있습니다.”

최 감독이 외부와 연대나 협력을 외치는 것은 스파프가 처한 현실적 문제와 관계가 깊다. 스파프는 예경으로 이관된 이후에도 예술위 소속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을 축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를 끝으로 예술위가 극장 지원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스파프는 안정적인 공연장 확보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

“저는 스파프의 공공성을 고려해 예술위와 더 긴밀하게 결합하길 바랐지만 잘 안됐습니다. 축제와 관련해 올해 프로그램을 지난 4월에 이미 끝내고 내년 프로그램을 6~8월 사이에 결정하려고 하는데요. 그래야만 그 프로그램을 갖고 다른 공연장에 파트너로서 공동제작이나 공동주최를 제안할 수 있어서입니다.”

축제와 아트마켓에 대한 최 감독의 통찰력은 대학 졸업 이후 30년간 축제와 국제 교류 분야에서 활동하며 체득된 것이다. 역사학 전공자인 그는 1993년 대학원 입학 후 첫 여름방학에 예정됐던 해외 리서치 프로그램이 취소돼 춘천국제연극제 영어-러시아어 통역 자원봉사로 공연계에 발을 들였다. 이듬해 춘천인형극제를 만든 1세대 문화기획자 강준혁, 춘천마임축제를 만든 1세대 마임이스트 유진규를 만난 게 전환점이 됐다.

“춘천국제연극제에서 자원봉사할 때 연극을 통한 사람과 만남, 다른 세계와 교류가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공연 통역으로 일하다가 이듬해 춘천인형극제의 국제 업무를 잠시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축제 일을 시작했어요. 한국마임페스티벌의 유진규 선생님을 찾아가 당돌하게 해외 업무를 제게 맡겨달라고 했습니다. 한국마임페스티벌이 1994년부터 해외 단체(예술가)를 초청하기 시작해 이듬해 춘천국제마임축제로 바뀌는 시기였거든요. 당시엔 공연예술축제에 대한 인식이 낮고 공적 지원이 적었기 때문에, ‘열정 페이’로 일해야 했지만 축제에 빠져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최 감독은 춘천마임축제에서 2010년까지 15년간 일하며 사무국장, 부감독을 역임했다. 당시 춘천마임축제는 젊은이들을 위한 밤샘축제인 ‘도깨비 난장’ 같은 신선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전통적인 마임만이 아니라 현대무용, 서커스, 신체극 등으로 스펙트럼을 확대해 호평을 받았다.

“춘천마임축제는 원래 몸짓 연기를 통해 서사를 전달하는 판토마임 중심이었는데요. 유진규 감독님과 토론을 거쳐 ‘몸의 언어를 통한 장르의 확장’을 추구했습니다. 축제의 포용적인 태도에 새로운 시도를 하던 예술가들이 몰려왔죠. 축제의 공간성, 관객 개발, 국제성도 중시했습니다. 당시 춘천 고슴도치섬에서 도깨비 난장을 열어 관객에게 일상 탈출을 느끼게 했고 어렵게 느껴지던 마임과 무용, 음악, 국악 등의 협업을 추구했습니다. 단순히 공연을 보여주는 대신 해외와 교류 및 합작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축제와 프로듀서의 역할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최 감독이 스파프에서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첫술에 배부르기는 어렵지만 예경으로 이관된 후 정체성 없이 혼란스러웠던 축제가 안정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올해 스파프는 10월 7~30일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과 더불어 서울문화재단의 대학로극장 쿼드(QUAD) 등에서 해외 초청작 3편을 포함해 총 17편을 선보인다. 페미니즘, 노인의 성(性) 문제, 기후 위기 등 동시대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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