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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염치의 실종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하며 그 근거로 인간의 마음에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4덕(德)이 있다고 했다. 4덕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지만 4가지 실마리, 즉 4단(四端)을 통해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타인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부끄러움을 아는 수오지심(羞惡之心), 타인에게 양보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맹자는 이게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그 가운데 하나인 수오지심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에도 분노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의(義)의 실마리라고 했다. 수오지심은 자신을 향한 마음만 놓고 보면 염치(廉恥)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허물을 경계해 공동체의 건강성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하지만 수오지심, 염치의 문화는 설자릴 잃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염치 실종이 심각한 수준이다. 타인의 잘못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비난하지만 자신과 내 편의 비슷한 허물은 합리화하기에 급급한 내로남불, 이중잣대가 기승을 부린다. 책임을 질 일이 있어도 남 탓하기 바쁘고 명백한 비위 의혹이 불거졌는데 막무가내로 버티는 행태도 익숙한 풍경이다. 탈당과 복당을 손바닥 뒤집듯 하고도 고개를 뻣뻣이 쳐드는 정치인도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엄두를 내지 못할 짓을 하고도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할 고위 공직을 탐내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인사청문회는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몰염치를 확인하는 자리가 된 지 오래다. 본인의 논문을 여러 차례 자기 표절한 의혹이 있고 만취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던 대학 교수가 교육부 장관을 노린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정치자금으로 남편 차량을 도색했고 갭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온갖 허물에도 고위 공직을 꿰찬 선례가 너무도 많으니 이들에게 염치를 주문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겠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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