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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소비자물가 34년 만의 최고치… ‘글로벌 S’ 점점 현실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항구에서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공급망 이슈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나의 최고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전 세계가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도 경기가 장기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데다 미국과 유럽, 한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코로나19 사태를 빠져나오자마자 우크라이나 전쟁의 후폭풍을 맞으며 저성장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WB)은 ‘오일쇼크’가 세계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1970년대 이후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란 경고까지 내놓고 있다.

WB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경고”

세계은행은 지난 7일(현지시간)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전 세계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로 낮췄다. 지난 1월 같은 보고서를 통해 제시했던 4.1%보다 무려 1.2% 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WB는 또 선진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 2.6%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이 2.5%, 유로존이 2.5%, 일본 1.7% 수준으로 예상된다. 중국도 4.3% 수준의 성장에 그칠 것이란 추정도 내놨다.

이 같은 분석은 전 세계가 겪은 코로나19 피해 여파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두 요인이 세계 각국의 경제 둔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WB는 “세계 경제가 미약한 성장과 높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는 시기로 접어들 수 있다”며 스태그플레이션의 도래를 직접 언급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저성장과 고물가가 한꺼번에 나타나 장기화되는 경제현상을 일컫는다. 보통의 경우 저성장과 고물가는 정반대다. 물가가 비싸다는 건 수요가 폭발한다는 뜻이고, 수요 폭발은 경제 성장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동 산유국의 생산량 감축으로 석유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던 70년대에 저성장·고물가의 동시발생 현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당시 선진국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나섰고, 이는 신흥경제시장과 개발도상국에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연쇄작용을 낳았다.

WB가 이번에도 이런 적신호가 켜질 것이란 경고를 내놓은 이유는 세계 경제가 당시 상황과 유사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맬패스 WB 총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봉쇄, 공급망 붕괴 등으로 경제 성장이 망가지고 있다”면서 “많은 국가들이 경기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 8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전 세계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4.5%에서 3.0%로 낮춰 제시했다. OECD는 “세계 각국의 경제는 급격히 둔화할 것”이라며 “내년에도 유사한 속도를 유지할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OECD 소비자물가 9.2% 상승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OECD 38개 가입국의 4월 소비자물가는 한 달 동안 무려 9.2%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98년 9월(9.3%) 이후 34년 만의 최고 상승률이다. 이들 국가의 물가는 3개월 연속 상승해 2월 7.8%, 3월 8.8%를 기록한 뒤 이번엔 9%대를 넘긴 것이다.

가장 많이 오른 품목은 식료품으로, 4월 11.5% 포인트나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주요 곡물의 공급 부족, 세계 각국의 식량보호주의 부활 등이 맞무려 발생한 현상으로 파악된다.

터키가 소비자물가가 무려 70%라는 기록적인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에스토니아(18.9%) 리투아니아(16.8%) 체코(14.2%) 등 9개국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은 4.8%를 기록해 일본·스위스(각 2.5%) 이스라엘(4.0%) 다음으로 낮았다.

세계 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인 미국은 8.6%의 상승률로 81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찍은 게 연쇄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경우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6%로 4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4월(8.3%)보다 0.2% 오른 수치이자 1981년 12월 이후 최대폭의 상승이다. OECD는 올해 연간 상승률 전망치를 8.8%로 제시했다. 1988년 9.8% 이후 34년 만의 가장 높은 수치다.

유가 급등에 바이든 리더십 위기

물가 상승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악의 리더십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전미자동차협회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격이 갤런당 5.004달러로 1년 전(3.077달러)보다 62.6%나 올랐다고 밝혔다. 평균 휘발유 가격이 5달러를 넘는 지역은 캘리포니아(6.43달러) 네바다(5.64달러) 알래스카(5.56달러) 일리노이(5.56달러) 워싱턴(5.54달러) 등 22개 지역에 달한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경기침체의 전조로 여겨진다. 가격 급등의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돼 구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소비자 구매력을 잠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산운용사 GMO 공동 설립자인 제러미 그랜섬은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은 유가 급등은 항상 경기침체를 불러왔다”고 했다.

이처럼 미국 경제가 흔들리자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연방의원 등 민주당 관계자 50명가량을 인터뷰한 결과 상당수가 대통령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2024년 대선에서 불출마해야 한다는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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