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많은 사람이 이런 말들을 합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피하고 싶은 일들, 원치 않은 일들, 반갑지 않은 일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닥쳤을 때마다 내뱉는 말,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말입니다. 이 일로 인생이 바뀌기도 하고, 생각이 변하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태도 역시 달라지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역시 이런 일들은 똑같이 생겨납니다. 신앙심이 여러 어려움과 고민과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얼마 걸리지 않아 그 믿음에 실망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믿음이 있고, 교회를 출석해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하는 의문과 탄식은 여전히 존재하게 됩니다. 이럴 때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흔들림 없이 기억하며 마음으로 굳게 믿어야 할 예수를 구원자로 고백한 사람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결과로서 성도들이 누리는 하나님과의 화평과 소망과 희락에 대한 말씀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복된 결과를 보여주는 본문을 원문에 충실하게 다시 번역하면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화평을 가지는 중이다’입니다. 즉 본문은 예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의 객관적인 상태에 대한 언급으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의 죄가 사하심을 얻었으므로,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바울이 언급한 ‘화평’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화평’은 ‘평화’ ‘화합’ ‘건강’ 등 포괄적 의미를 갖는 단어입니다. 고전 헬라어 문헌들에서 이 단어는 전쟁에 반대되는 것, 전쟁의 종식으로부터 오는 평화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였습니다. 더욱이 이것이 오직 여호와와의 관계에서만 나오고 오직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것으로 이해돼 쓰였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화목이라는 은혜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놀라운 삶을 허락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며 평강입니다. 세상의 가치로는 평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권력으로 얻을 수 없는 참 기쁨과 참 행복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에 참여하리라는 소망 중에서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싸움과 갈등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싸움과 갈등과 고민은 그들의 확신과 평화를 위협하지 못하며 오히려 더욱 큰 확신을 줄 뿐입니다.

결국 성도들이 소망 중에서 즐거워해야 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 소망 중에 있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흔들릴 수 없는 토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들을 향해 보이신 위대한 사랑을 논증한 사건이었습니다. 여기에 성도들이 기댈만한 확신의 기초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왜 하필 저입니까.” 이런 고통과 고난과 괴로움의 하소연이 믿음과 즐거움과 소망으로 변하여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오히려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종남 장안원교회 목사

◇이종남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과 동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현 장안원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고 사도행전적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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