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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나’를 지켜주는 성품… 3개 기둥 갖춰야 바로 선다



성품학습을 하고 있는 영광교회 리더스쿨 모습.




필자가 성품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지금부터 20년 전 쯤 국내에 미국으로부터 ‘품성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미국에 거주하던 교포 한 분이 들여와서 몇몇 교회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하던 때였다. 이때 처음으로 ‘성품, 품성’이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고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고 인격의 문제는 도덕의 영역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격이 우리 자신이며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원한다는 생각이 들어 성품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간의 인격은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단순하게 하나로 말할 수 없다. 인격은 인성, 성격, 성품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릴 수 있고 각각의 느낌과 초점이 다르다. 이중에서 어느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할까? 인격, 인성은 너무 광범위하고 성격도 심리학적인 용어이다. 이 세 가지는 너무 어렴풋하며 최종 열매는 아직 모르는 저변에 깔린 개념이다.

대장장이가 대장간에서 무엇을 만든다. 아직 최종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대장간의 모양이 어떻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최종 제품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대장간의 존재 목적이 이것이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인간의 인격도 그 최종 열매가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인성 좋고 성격 좋아도 이 모든 것의 열매가 되어야 할 윤리적인 행동에 문제가 있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윤리적인 힘에 초점을 맞춘 성품교육이 매우 중요하고 절실하다. 우리 사회의 존경받던 분들이 한 순간에 도덕적인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 겉으로 보이는 인격, 성격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지탱해줄 수 있는 윤리적인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품은 ‘도덕적인 규범에 비추어서 평가되는 성격적인 특성’ 즉 도덕과 관련된 성격 특성이다. 이와 같이 성품은 옳은 것이 무엇인줄 알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하고 성경적으로 보면 말씀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또한 죄를 짓지 않고 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윤리적인 힘을 의미한다.

인간이 언제 무너지는지 생각해보자. 인간은 안에서 무너질 수 있고 밖에서 불어오는 태풍에 의해서도 무너질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나를 지키는 것이 관건이다. 안에서의 부패로부터 또 밖으로부터의 태풍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한다. 결국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키는 것이 관건인데 이것을 위해서는 내 존재의 의미를 알아야 하고, 그럼에도 내 자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이 자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 성품을 세우는데 필요한 세 가지 기둥이다. 이중에서 첫째로, 내 존재의 의미를 살펴보면 인간은 잘 나갈 때도 문제가 되지만 특히 어렵고 힘들면 한 없이 좌절하게 된다. 이때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는데 인생이 힘들 때 도덕적으로 무너지는 사람은 성품이 약한 사람이고 꿋꿋하게 견디는 사람은 성품이 강한 사람이다. 이와 같이 성품은 힘들 때 알 수 있다. 내가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고 계속해서 좌절되는 일이 있어도 이것을 흔히 있는 일로 여기고 내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사람이 성품이 좋은 사람이다.

우리는 거울을 보면서 두 가지 감정 중에 하나를 갖는다. 하나는 자신감이고 또 하나는 실망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만족하면 자신감을 가지고 만족하지 못하면 비참해지는 것처럼 성품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과 같다. 내가 나를 가치 있게 생각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어떤 사람이 나를 심하게 비난했다고 해보자. 그래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자신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다. 반면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자신이 없으면 인생의 모든 것에 상처를 받는다. 인생이 힘든 것도 상처고, 학생들의 경우에는 공부를 잘 못하는 것도 상처고, 외모가 뛰어나지 못한 것도 상처다. 내가 살아서 숨 쉬는 모든 것이 상처가 된다. 이와 같이 부정적인 자아상이 도덕적인 타락으로 가는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은 후에 죄 안 짓고 살기 위해 이를 악물지만 인생의 기초가 조금만 흔들려도 속절없이 무너질 때가 많다. 인생에서 원치 않는 바람, 두려운 바람이 불 때마다 제일 먼저 하나님에게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고,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고, 교회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각종 신경증과 상한 마음으로 인해 무너진다. 또 남자들의 경우에는 교회 밖에서 도덕적인 타락에 빠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하여 기도도 해보고 금식도 해보지만 인생이 캄캄하고, 사람들 앞에서 비참함을 느낄 때마다, 이런 나를 돌보시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 때문에 잠 못 이루고, 결국 나를 위로해줄 것은 세상 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세상 것을 계속해서 탐닉해보지만, 그래도 갈증은 더욱 심해지고 온전한 신앙인으로 살지 못하는 무너짐이 계속된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하나님 앞에서의 내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울 속에서 나를 보지 않고 내 인간적인 거울 속에서 나를 보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나, 내가 그동안 들었던 나, 사람들의 입과 눈초리를 통해서 보이는 나,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 속의 나를 진짜 나로 생각하고 절망하며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지를 아는 것이 성품 세우기의 첫 번째 기둥이 된다. 하나님의 거울 속에서 나는 누구일까?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말씀하셨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는 말씀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또 아가서에서 예수님을 상징하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2:10)라고 했던 말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도 예수님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울 속에서 우리는 위대하고 아름다우며 굳건하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릴 필요가 없다. 이러한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알게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품을 세우는 두 번째 기둥은 자아의 문제를 아는 것이다. 기독교 심리학자인 로렌스 크랩은 인간이 다른 사람과 분리된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자아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이 성품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자아는 ‘나’ 곧 ‘자기’이며 이러한 ‘나’가 나타나는 모습이 성품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떤 나로 나타나고 싶을까? 돈 많은 나, 인기 있는 나로 나타나고 싶을까? 세상을 호령하는 나로 나타나고 싶을까? 아니면 겸손히 이웃을 섬기는 나로 나타나고 싶을까? 이러한 자아의식이 성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품교육은 이러한 자아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자아는 자신을 위해 살지 좀처럼 타인을 위해 살지 않는다. 또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타인의 생각이나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아만큼 고집스러운 것이 있을까? 인간의 자아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 그 어떤 것으로도 깨트리기 힘든 것이 인간의 자아다.

이러한 자아는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있다. 불안한 자아, 안정된 자아, 세상 것을 자꾸만 채워야 만족하는 자아, 자신의 고집된 신념과 가치체계를 계속 유지하려는 자아,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자신을 고치려고 하지만 위기가 올 때마다 또 다시 무너지는 자아, 이런 자아의 모습이 성품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품교육은 학생들에게 도덕 몇 가지와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는 묶은 땅이 기경되지 않는다. 성품교육은 방법론 이전에 인간의 마음 밭을 갈아엎는 일이며 인간의 의식, 무의식에 깊이 숨어있는 자아의 잘못된 부분을 드러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아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나만을 위해 살려는 자아를 하나님과 타인을 위해 살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성품을 세우는 세 번째 기둥은 자아의 문제 즉 죄를 다루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인간의 죄는 영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한 심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의 죄는 내면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죄 된 심리상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아닌 자아의 그릇된 욕망을 향해 있다. 이것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잘못된 가치체계를 성경적인 가치 체계로 바꿔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아가 극렬하게 저항하기 때문에 자아를 가르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밖에서 오는 영적인 힘이 필요하며 교회가 신자들에게 이런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 영적인 힘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잘못된 신념체계를 바꾸어주는 교육도 해야 한다. “기도하고 성경공부 했으니 이제 알아서 도덕적으로 사십시오”라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대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말씀이 더 큰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환자의 아픈 부위에 정확히 비추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의 성경적인 가르침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을 가르치면 그것이 인간의 내면에 들어가서 자동적으로 인간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돌밭의 돌, 가시밭의 가시를 제거하지 않고 무작정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는 인간 안에 쌓여 있고 얽혀있는 것이 너무 많다. 한 개인의 나이가 50이라면 50년 동안 쌓여온 자신만의 인생관이 있고 세상이 주는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이 있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깨트려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 맺기 어렵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람들의 거짓된 가치체계에 정확히 비추어 주어야 한다. 먼저 거짓된 가치체계의 문제점을 알게 하고 그 부분을 말씀으로 해결책을 제시해서 영적인 힘에 의해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은 내면에 있지만 그 해결방법은 말씀과 기도와 같은 영적인 힘에 의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죄가 심리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을 함께 다루어야 하는 복합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왜 안 변할까? 영적인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데도 왜 문제를 일으킬까? 매일 같이 큐티하고 기도시간을 지켜 기도하는데도 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까? 자아의 문제, 고집의 문제, 인간의 욕망의 실체인 에고(ego)의 문제 등 심리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됐기 때문이다. 교회가 인간의 내면을 고치는 성품교육을 진행하고 영적인 힘을 주기 위한 영성운동에 매진할 때 교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성품의 길로 갈 수 있다.

이해주 박사 (성품교육 전문가·씨앗교회 담임목사)
◇필자소개= 이해주 박사는 고려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성그룹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와 기독교교육학 박사를 취득했다. 석사논문은 ‘청소년의 성품교육을 위한 교육과정 개발’이며 박사논문은 ‘기독가정에서 부모의 양육태도가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성품교육 전문가이다. 현재는 씨앗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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