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 천연두의 역습



천연두(smallpox)는 폭스 바이러스(pox virus)의 한 종인 바리올라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이다. 사전적으로 폭스는 물집이라는 뜻이다. 주머니를 의미하는 ‘포카(pocca)’에서 유래됐고 물집을 터뜨려 생긴 구멍을 뜻하는 ‘포크(pock)’라는 말로 이어졌다. 지금은 ‘피부 발진을 야기하는 질병’이라는 의미로 폭넓게 사용한다.

폭스 바이러스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 심지어 연체동물과 곤충에서도 발견된다. 척추동물에 기대 사는 코르도폭스 바이러스에만 20개 가까운 아류가 나왔는데 주로 숙주의 이름을 붙인다. 카프리(염소)·카멜(낙타)·라쿤(너구리) 폭스 바이러스가 그런 식이다. 에드워드 제너의 천연두 백신 접종은 카우폭스 바이러스를 사용해 우두법이다. 요즘 유행하는 원숭이두창은 몽키폭스 바이러스가 야기한다. 실험실 원숭이에서 처음 나왔지만 실제로는 쥐, 다람쥐 같은 설치류가 주로 감염된다.

천연두는 오랫동안 인류를 위협했다. 고대 이집트 람세스 5세의 미이라에서 발진 흔적이 나왔을 정도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증손자인 루이 15세는 할아버지, 아버지, 형이 천연두로 숨져 5살의 나이에 왕이 됐다. 그도 결국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다. 라틴아메리카 고대문명 아즈텍 제국은 스페인 군대가 가져온 천연두에 멸망했다. 천연두로 죽은 인류는 대략 10억명으로 추산된다. 흑사병 사망자 3억명의 세 배가 넘는다.

물론 인류는 백신을 찾아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60년대 후반부터 천연두 근절계획을 세워 대대적인 퇴치작전을 벌였다. 그 결과 1980년 5월 8일 천연두 근절을 선언했다.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그러나 천연두는 폭스 바이러스의 일개 분파에 불과했다. WHO는 어제 원숭이두창이 심각해지자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신종플루, 에볼라 바이러스 등 심각한 전염병이 확산할 때 내리는 긴급조치다. 40여년 만에 재개된 폭스 바이러스의 공격. 그 역습이 무섭다.

고승욱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