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종합

“반도체 동맹 ‘칩4’ 참여 신중… 기술력 있어야 끌려다니지 않아”

양향자 의원은 “과학기술이 정치를 이긴다”며 “대한민국이 앞선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 국가 간 어떤 형태의 정치 상황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반도체는 경제를 넘어 외교이고 안보이며 국방”이라고 강조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양향자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1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인터뷰는 반도체 강의로 시작됐다. “세계는 반도체 패권 전쟁 중이에요.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 ‘칩4’(Chip4·한국 미국 일본 대만)도 그 일환이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왜 한국에 오자마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달려갔겠어요. 경제 전쟁이 결국 기술 경쟁이고, 기술 패권을 가지고 있어야 대한민국이 미·중 사이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거든요.”

반도체 강의를 듣기에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무소속 양향자 의원만한 ‘1타 강사’가 없다. 42개의 특허를 가진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 출신으로 국회의원 300명 중에 유일한 반도체 전문가다. 잘 알려진 대로 고졸 여성 최초로 삼성전자 임원을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자 지난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 반대에 이어 야당 의원으로서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양 의원은 글로벌 산업지형을 정리한 그래프를 커다란 화면에 띄우고 “반도체는 기술 패권이 국제정치를 좌우하는 기정학(tech-politics) 시대의 핵심”이라며 “국회의원으로서 제 소명을 찾았다. 반도체산업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발굴에 마중물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했다.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칩4를 먼저 짚어보자. 중국은 ‘한국이 중국 반도체 시장과 단절하는 것은 상업적 자살행위’라며 강하게 견제하고 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의원님을 직접 찾아오기도 했는데, 칩4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 수출의 60% 가량을 차지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 거점을 두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칩4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산업의 인프라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전략적 기술 동맹에서 한국만 소외돼서는 안 된다. 다만 중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한국이 칩4에 참여하더라도 한·중이 기술과 산업 밸류체인으로 긴밀하게 묶여있을 때 양국의 이익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칩4에 참여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소한 끌려가지는 않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 없지만 우리가 역제안을 할 수도 있다. 그 바탕은 결국 기술력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주 5년간 340조원의 기업 투자를 이끌기 위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했다.

“특위에서 주요 의제로 삼았던 내용이 모두 담겼다. 특위는 규제 개혁, 인재 양성, 투자 촉진 세 분야를 중심으로 8월 초에 반도체 산업 지원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산업계에서는 인재 육성에 대한 요청이 가장 크다. 외국 엔지니어들이 코로나19로 거의 귀국했고, 저와 함께 일했던 많은 중국 엔지니어들이 지금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그만큼 중국이 곧 따라올 거라는 두려움이 있다.”

-윤석열정부 들어 가장 주목받는 산업이 반도체인데, 다른 첨단산업과 형평성 문제는 없나.

“반도체는 우리 GDP(국내총생산)의 6%를 차지하고 전체 수출의 20%를 맡고 있다. 반도체를 하나의 산업으로만 보는 건 굉장히 편협한 시각이다. 4차 산업혁명의 힘은 반도체에서 나온다. AI(인공지능) 빅데이터 6G 자율주행자동차 바이오 배터리 플랫폼 등 거의 모든 산업이 반도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30년 동안 세계 1위를 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로 추세가 옮겨가는 상황에서 국가적 지원 없이 반도체 패권을 잃어버리게 되면 기술 속국, 기술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반도체 특위가 국회 차원의 특위로 확대 개편이 되는 건가.

“그렇게 돼야 한다. 지난해 민주당 반도체 특위가 있었지만 당 지도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서 없어지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와 추가 입법 사항 추진을 위해 국회 상설 특위로 승격돼야 한다.”

-헌정사상 최초로 야당 인사가 여당의 특위 위원장을 맡는 주인공이 됐다. 민주당 복당 신청을 철회했고 국민의힘에도 입당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특위 이후의 행보에 대한 구상은.

“지금은 오로지 반도체 특위의 성공에만 집중하고 있다. 어느 정당에 입당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 반도체 특위 운영에도 특정 정당 소속보다 소속이 없는 지금의 상태가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 정파와 이념을 초월한 새로운 협치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윤석열정부에서 공직 제안이 오면 그때도 협치의 차원에서 응할 건가.

“제 기준은 항상 명확하다. 국가를 위한 길이라는 확신이 들면 하는 거다.”

-흔히 정치개혁이라면 586 퇴진 같은 세대교체를 먼저 떠올린다. 의원님은 과학기술인으로 세력이 교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가 53일 만에 정상화됐다. 세비와 특권을 싹 없애고 국회의원을 봉사직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제 메시지는 지금까지 법조인 관료 운동권 출신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왔다면 이제 과학 기술 산업 경제 기업 출신 전문가들이 국가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역할을 해보자는 것이다. 메르켈도 시진핑도 이공계 출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도 반도체를 공부하라고 했는데, 대통령도 공부하셔야 한다. 기술을 모르면 외교도 국방도 어렵다.”

-민주당 출신으로, 게다가 광주가 지역구인 입장에서 지난 봄 검수완박을 반대하고 복당을 철회한 것은 정치생명을 건 모험 아니었나.

“제 정치생명이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건가. 다들 내후년 (총선)을 궁금해하는데,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이후에 국민의 부름이 있지 않겠나. 처음 법제사법위원회 사보임을 요청받았을 때는 민주당 복당을 앞두고 있어서 선당후사의 마음가짐으로 찬성하려 했다. 중차대한 일을 그냥 찬성할 수는 없어서 법안을 공부했는데 검찰 개혁을 그런 절차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양심에 떳떳할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오상아(吾喪我·내 장례를 내가 치른다)’, 나를 죽이자고 했다. 양향자 문건이라는 게 그렇게 나왔다. 1000번은 고쳐 쓴 것 같다.”

-검수완박 이후 반도체 특위로 협치와 타협의 정치를 보여줬다는 박수를 받았지만 동시에 배신의 정치라는 비난과 문자폭탄도 받았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보는 이분법적 생각은 정치에서 없어져야 한다. ‘수박’(민주당 지지층이 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들을 지칭할 때의 은어)은 무조건 다 나쁜가.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다. 민주당 출신의 무소속 의원이 국민의힘 특위를 맡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길이 틀렸다고 한다. 새로운 길을 가자고 하면서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을, 내가 가는 것뿐이다.”

-학생들에게 ‘양향자 스토리’를 자주 강연하는데 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나.

“희망을 말한다. 광주여상 졸업 후 삼성전자 연구원 보조원으로 입사했을 때 할 줄 아는 건 주산 부기 타자뿐이었다. 그런데 커피 타고 책상을 닦으면서도 내 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반도체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공부했다. 일하면서 삼성전자 사내 기술대학 반도체공학과를 졸업해 연구원이 됐다. 배움이 너무 좋았고, 오늘 안 풀린 문제가 내일 풀릴 거라는 희망이 너무 좋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미래 세대의 눈에 불을 켜주고 싶다.”

-의원님도 한때는 ‘내 존재가 쌀 속 돌멩이 같다’고 좌절했다고 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연구원들 사이에서 꽤 오랫동안 내가 언제라도 축출될 것 같은 가치 없는 존재라고 느꼈다. 하루하루가 고달팠다. 그런데 내가 나를 돌멩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돌멩이로 만들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자’부터 시작했다. 내가 빛나는 쌀은 아니지만 싸라기(부스러진 쌀알)라도 되자고.”

-생각이 바뀐 계기와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그때 반도체 자료는 대부분 일본어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본어를 공부해 연구원들에게 나눠주는 자료에 한글 번역을 붙였다. ‘미스 양’이라고 부르던 연구원들이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그 ‘양향자씨’라는 말이 돌파구였다. 내가 나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 동기부여가 됐다. 젊은이들에게 아무리 사소해도 누구에게나 원씽(one thing·단 하나)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저에게는 원씽이 일본어였고, 거기에 제 기질이 더해졌다. 청년들이 아직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삼성에서 학벌과 여성, 지역의 유리천장을 깼다. 정치에서는 어떤 유리천장에 도전할 생각인가.

“유리천장이라고 의식한 건 없었다. 전례가 없다는 인식을 깨고자 했을 뿐이다. 사내 일본어 강의 수강 신청을 할 때도, 결혼 후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첫 임신부가 됐을 때도 그랬다. 사내 기술대학 원서를 낼 때는 ‘전례가 없으면 내가 선례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특위도 야당 의원이, 초선이, 여성이 위원장을 맡는 선례를 만들게 됐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