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함께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선 쫓기듯 먼 길을 걷다 피곤에 지쳐 바닥에 누운 야곱을 볼 수 있습니다.(창 28:10, 11) 야곱은 체력부터 관계적, 영적으로 모든 상황이 바닥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쓰러진 바닥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12~15절을 보면 야곱은 자신이 쓰러진 바닥에서 펼쳐지기 시작한 사닥다리가 하늘로 이어지고 그 위에 서 계신 하나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내 인생이 절망적이고 바닥이라 생각하는 순간에도 기억해야 할 건 내가 쓰러진 그 바닥이 바로 예수님의 등판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쓰러져도 예수님 등 위에 쓰러진다는 겁니다.

특히 15절을 보세요. 하나님은 야곱을 위로하고 힘을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무슨 뜻일까요.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이사야서와 마태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별명처럼 부른 또 다른 명칭이 있습니다. ‘임마누엘’ 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이름과 별명 속에 예수님의 사역 비밀이 있습니다. 그가 함께하심이 곧 구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 음성을 듣자마자 잠에서 깨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했구나.”

아마 야곱은 부모가 있는 브엘세바에서 삼촌이 있는 하란에 도착하기 전까지 고통과 위험이 가득한 광야 길을 걸으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외로움과 절망을 느끼며 두려워하고 있었을 겁니다. 16절 고백은 그랬던 야곱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깨닫게 됐음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에게 들었던 신앙, 즉 부모의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세우게 됩니다. 부모님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만난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인생, 어떤 순간에도 함께 하는 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사람을 구원하며 똑같은 경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만약 동일한 경우를 맞이해야 구원된다면 오늘날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맏아들을 바쳐야 하고 다윗처럼 돌팔매질을 잘해야 할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느냐에 상관없이 동일한 구원의 원칙을 고백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구원의 원칙은 야곱이 받은 축복의 원칙과 일치합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홀로 있어도 이런 축복과 구원의 원칙을 받은 자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51절의 나다나엘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새 이름입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꿈속에 사닥다리가 보이기를 기도할 게 아니라 간사한 마음 없이 메시아에 대한 확신을 하고 이 땅에서 구원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 야곱의 고백을 통해 우리도 담대히 고백할 힘을 다시 얻어야 합니다. 전 세계를 휘몰아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인생길 가운데 역경과 고통, 고난과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의 길 끝에 서서 손을 흔들며 건너오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나의 인생 ‘희로애락 흥망성쇠’의 어떤 순간에도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 길을 믿음으로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함께 하십니다. 아멘.

유임근 목사(KOSTA국제본부)

◇유임근 목사가 소속돼 있는 코스타(KOSTA) 국제본부는 ‘국제복음주의 학생운동’이라는 뜻의 ‘Korean Students All nations’의 약자다. 1986년 미국 워싱턴에서 유학생 수련회로 시작돼 현재 28개국에서 유학생은 물론 워킹홀리데이, 1.5세대와 2세대 등 다음세대, 몽골 중국 일본 베트남 러시아 등 타민족 다음세대를 신앙 안에서 세우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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