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국창 (1) ‘흙수저’로 태어난 삶… 하나님 만나 ‘막장인생’ 벗어나

강국창 장로가 최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강원도 태백 탄광촌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국민일보DB


나는 이른바 ‘흙수저’다. 탄광촌에서 태어나 어렵게 살다가 학과라고는 광산학과밖에 없던 공업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래도 다행히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 성공도 하고 무섭게 실패도 했지만 역경 속에서 다시 일어나 자랑스러운 기업인이라는 영광을 얻었다.

지금은 국내 4곳과 해외 4개국에 5개 공장을 운영하는 경영자이면서 교회 장로로, 9남매 리더로, 또 여러 직함에 따른 역할로 바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힘없고 ‘빽’없이 시작했지만, 일생일대 가장 큰 만남의 복인 하나님을 만나 실패에서 일어서는 힘을 얻었다.

얼마 전 팔순 잔치를 치렀지만, 거짓말 조금 보태 요즘도 청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아침 5시부터 새벽 기도를 시작으로 전화 영어 공부, 골프와 탁구, 걷기, 근력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한다. 조찬 모임을 갖고 출근해 퇴근 때까지 회사 일에 매진한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인생의 크나 큰 복이란 사실을 깨달았기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는 내 자랑을 늘어놓는 자리가 아니다. 실패 앞에 두려워하는 지금의 세대들과 인생의 끄트머리를 함께 걷고 있는 선배로서, 나의 삶과 신앙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다시 일어서고 도전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는, 반전 인생을 함께 꿈꾸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강원도 탄광촌에서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래 부모님 두 분의 고향은 경북 영양이었다. 1940년대 중반 부모님은 강원도로 이주하셨다. 영양우체국 부국장을 지낸 아버지는 그 경력을 바탕으로 대한석탄공사 관리직으로 일하셨다. 아버지는 실제 광부는 아니셨지만 광부들과 함께 생활하고 그들을 관리하는 입장이다보니 그들과 일상을 늘 함께하고 계셨다.

“느그 아버지나 다른 집 아버지들이 그렇게 석탄가루 마시면서 돈 벌어 가정을 살리고 있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아버지가 지나가듯 던지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우리 동네에서 광부가 아닌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너희 아버지도 탄광 다니시지?” “응, 우리 아버진 장성광업소. 너희 아부진?” “우린 그 옆 탄광으로 다니셔.”

석탄 산업의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시절, 삶의 모든 사이클이 탄광촌 위주로 돌아갔다. 가족의 생활 패턴 또한 3교대 근무를 하는 아버지들의 근무 스케줄에 따라 달라졌다. 하지만 10대 중반을 지나면서 나는 한숨이 많아졌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라보니 뭔가 꽉 막힌 답답함이 들었던 것이다.

‘아, 나도 결국 탄광촌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평생 탄광촌 마을을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막막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반대 급부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 또한 끓어올랐다. 탄광촌이란 인큐베이터에서 ‘막장 인생’이 아닌 넓은 세상으로 도약할 길을 찾고 싶었다.

약력=1943년 강원도 태백 출생, 연세대 전기공학과 졸업, 동국성신㈜·가나안전자정밀㈜ 회장, 인천경영자총협회장, 국가조찬기도회 부회장, 서울 수정교회 명예장로.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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